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범려 (문단 편집) == 생애 == 범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오(춘추시대)|오나라]]와 [[월나라]]가 처음으로 맞붙었을 때인데, 당시 오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합려]]가 즉위한 이후 [[오운]]과 [[손무]]의 활약으로 초나라의 [[도읍]] 영까지 강탈해서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신포서의 간곡한 부탁으로 출병한 [[진(영성)|진나라]]의 지원군과 국가가 빈 틈을 노린 [[월나라]] 왕 [[윤상(월나라)|윤상]]의 기습 및 합려의 동생 부개가 일으킨 반란에 의해 후퇴해야 했으나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초나라를 멸망시킬 뻔하기도 했으니 그 기세만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거기에 오나라를 기습했던 윤상이 죽고, 구천이 즉위하니 나라가 안정적이지 못한 때에 [[월나라]]를 쳐야 한다며 전쟁을 일으켰다. 《[[사기(역사책)|사기]]》에 따르면 이때 범려가 월군 내에서 결사대(死士)를 선발하여 그들을 오군 진영 앞에 보낸 후, 일제히 목을 찔러 [[자살]]하기를 몇 번에 걸쳐 반복하다가 갑자기 오군을 공격하게 하는 기책을 내어 절대 우세에 있던 오군을 격파했다. 《[[삼국지]]》에서 [[태사자]]가 [[만천과해|북해의 포위망을 뚫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계책. 이 과정에서 화살에 맞은 오왕 [[합려]]는 중상을 입고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한 후 죽음에 이른다. [[구천]]은 이 전쟁에서 오나라를 격파한 것에 자만하여 [[와신상담|장작 위에서 누워 자며 구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오왕 [[부차]]를 얕잡아봐 범려의 충고도 듣지 않고 정병 30,000명으로 오를 공격했다. 그러나 도리어 부초 전투에서 부차에게 대패한 후 회계산에서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범려는 구천을 구하기 위해 오나라의 대부 [[백비]]를 [[뇌물]]로 매수하고, [[부차]]에게 [[미녀]]들을 바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구천은 오나라로 건너가 [[부차]]를 섬기게 되었고 범려가 그를 수행했다. 부차는 [[구천]]을 석실에 가두고 치욕스러운 마부 노릇을 강요했다. 부차는 범려에게 자신의 신하가 될 것을 권유했지만 범려는 완곡하게 사양하고 구천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러던 중 [[부차]]가 병에 걸리자, 범려는 [[구천]]을 설득해 부차의 똥(!)을 핥게 하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불사하게 한다. 부차의 병이 쾌차할지의 여부를 알아본다는 명분이었지만 부차의 환심을 사고 구천에 대한 의심을 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부차는 자신의 변까지 핥아가며 아부하는 구천에게 넘어가 버렸고, 건강을 회복한 뒤 구천과 범려를 월나라로 돌려보내게 된다. [[월나라]]로 귀국한 후, [[구천]]은 [[부차]]에게 복수할 날만을 다짐하며 쓴 쓸개를 곁에 두고 맛보며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한편 범려는 구천에게 각종 부국강병책을 제안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월나라는 점점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범려는 오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킬 속셈으로 [[서시|시이광]]과 정단이라는 [[미녀]]를 부차에게 바치고, 그로 하여금 [[주색]]에 빠지게 만들었다. 주색에 빠진 부차는 잇단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오나라의 국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갔다.[* [[서시|시이광]]은 범려의 정인이었다고 하며, 오가 멸망한 후에 범려와 함께 잠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몇 년 후, [[부차]]가 [[제나라]]를 공격하러 대군을 이끌고 북진한 틈을 타 [[구천]]은 오나라를 기습해 부차의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결국 부차는 구천에게 전에 살려준 예를 들어 항복했다. 마음이 약해진 구천은 순간 망설였지만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하던 일을 잊으셨습니까!"라며 진언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에 자신을 살려줬기 때문에 차마 죽일 수가 없었는지 100호의 장[* 호는 가구를 세는 기본 단위로, 100호는 1백 가구. 즉 왕에서 동네 이장으로의 대강등이며, 왕의 자격이 없다고 말한 셈이다.][* 멸망한 국가의 왕의 입장에선 엄청난 치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내 손으로 너의 피를 묻히기 원치 않으니 죽을 거면 [[자살]]하라고 중용한 것이다, 즉 살거면 치욕을 견디고 100호의 장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냥 죽으라는 것이다.]으로 봉하겠다고 제안했다. 부차는 자신이 늙어 군왕을 섬길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절하고 저승에서 [[오운]]을 볼 낯이 없다며 고소산에서 얼굴을 가린 채 자결했다. [[구천]]은 [[부차]]가 죽은 후 여세를 몰아 북상하여 모든 [[제후]]들을 소집해 [[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부차가 아버지 합려의 원한을 갚겠노라고 장작 위에서 잠들면서 다짐하다가 기어이 성공시킨 것과, 또 구천이 그에 대한 원한을 쓸개를 핥아가며 잊지 않고 이뤄냈다는 복수의 연쇄에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