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범려 (문단 편집) == 말년 == 모든 것을 다 이룬 후, '''범려는 갑자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구천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아는 [[신하]]들을 죽일 것이라 예상하여 잠적했다고 전해진다. 잠적하기 전 대부 [[문종#s-2|문종]][* 원래는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떠나려 했지만, 자기를 천거해줬고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어려움을 함께 해왔던 사이인지라 차마 못본 척 할 수는 없었다.]에게 "월왕은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대부께서도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십시오."라고 충고했지만 문종은 그 이야기를 그냥 흘려 버렸다고 한다. '''결국 문종은 범려의 예상대로 자결을 강요받는다.'''[* 문종이 반란을 꾀한다는 참소가 들어오자, 구천이 편지와 검을 문종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당신이 일곱 가지 계략을 말했는데, 나는 그 중 셋을 사용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소. '''남은 계책 넷은 지하에서 선왕을 모시며 쓰는 게(반역은 저승에서나 꿈꾸는 게) 어떠시오?'''"] 그리고 몇년 안 가 구천도 병으로 죽고 월나라는 내분으로 쇠약해져 버렸으며, 국력을 회복한 초나라에게 멸망당하면서 월나라 왕족도 거의 절멸당해 그 방계 혈족들은 고씨로 바꾸고 살게 되었다. 구천에게서 벗어나 잠적한 범려의 이후 행적은 미스터리이나 《[[사기(역사책)|사기]]》에 의하면 그가 [[제나라]]로 도망쳐 자신의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고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거부가 된 범려의 재능을 알아본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범려는 모은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서는 또 잠적해 버렸다. '치이자피'라는 말은, 오나라의 [[공신]]이었으나 결국 모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오운]]의 시신이 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에 담겨 물에 던져진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제나라의 상경 벼슬을 얼마간 살다가 높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제나라를 떠났다고도 한다. 이후 범려는 도(현재의 산둥성 허쩌시 딩타오현)라는 곳에 갔는데 그곳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범려는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해 거부가 되었고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양생장수지도와 한의학에 통달했다고 한다. 도주공 시절 알려진 일화가 있는데[*출처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 그의 차남이 초나라에서 살인을 하여 사형을 당할 처지에 있었다. 이때 범려 왈, "살인을 했으면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1,000금을 가진 부자의 아들은 [[공개처형|길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그는 막내 아들에게 거금을 주어 초나라에 보내려고 했는데 장남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목숨을 걸고 간청하기에 장남에게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장남은 구명에 성공하지 못하고 동생의 시체를 안고 돌아왔다[* 범려의 오랜 친구인 장생이라는 인물을 찾아가서 황금을 주되, 돈을 아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장남이 장생에게 황금을 전달하자 장생은 초왕을 찾아가 사면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이것이 장생의 공로인 줄 몰랐던 장남은 장생에게 황금을 돌려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열받은 장생이 황금을 돌려준 다음 초왕에게 범려의 아들을 먼저 죽일 것을 주청한 것.]. 어머니와 모든 마을 사람이 슬퍼했으나 범려는 혼자서 웃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큰 아들이 동생을 위하지 않아서가 아니지. 큰 아들은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갖은 고생을 다해봤기 때문에 좀처럼 돈을 쓸 줄 모른다. 반대로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게 어려움 없이 자랐기 때문에 돈 모으는 고통을 모르고 돈을 잘 쓴다. 내가 막내를 보내려 했던 것은 막내라면 거기 가서 돈을 크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그렇게 못한다. 그게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된 거지. 여기서 '천금지자 불사어시'(千金之子 不死於市)라는 성어가 나온다. 그러나 치이자피나 도주공의 이야기가 과연 범려와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또한 절세 미녀 [[서시]]와의 러브 스토리도 유명하지만 과연 이게 진실인지도 의문이다. 중국인들이 범려와 여타 이야기들을 섞어서 희대의 지능형 영웅을 창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범려가 말년에 치이자피나 도주공으로 불린 썰은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최소한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진 채 전해 내려온 이야기일 수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