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병신정변 (문단 편집) === 기씨 일파 숙청 === 부원배들 중 핵심 세력으로써 각종 전횡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했던 기황후의 오빠 대사도 [[기철]]과 태감 [[권겸]], 경양부원군 [[노책]]이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당하고 그 일당들은 죄다 도주했다.[* 이 때 부원세력인 기철 일파가 일거에 처단되었다. 공민왕은 [[조일신]]의 반란으로 무산되었던 개혁을 부원세력인 기철 일파를 제거하면서 재개했다. 공민왕의 부원세력 제거는 고려 내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공민왕의 지지세력의 존재, 원나라의 정국 변화 등이 결합되어 현실화될 수 있었다. 조일신의 난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을 지지하던 [[이제현]]과 같은 유신 세력, 연경 호종 세력, 외척 세력 등은 고려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원나라 정국의 동향은 공민왕에게 보다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원나라는 하남과 안휘성에서 시작된 [[홍건적]]의 봉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원나라 조정의 실력자였던 메르키트 [[토크토아]]가 고우성의 반적 [[장사성]]을 정벌하러 나선 것을 틈타 반대파들이 토크토아를 제거했다. 그리고 장사성을 토벌하러 간 고려 군사들이 귀국하면서 원나라 정국의 동향을 비교적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공민왕은 5년 5월에 전격적으로 부원세력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반원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때 제거된 부원세력은 기철, 권겸 등을 필두로 25명이나 되었다. 공민왕의 이러한 반원 개혁정책은 원나라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냈지만, 원나라는 당장 눈앞에 닥친 홍건적의 진압도 힘에 겨워 연경조차 제대로 수비하지 못했다.] 궁성을 삼엄히 경계하는 한편 정지상을 석방하고, 순군제공으로 임명해 국왕을 경호하게 했다. 홍언박을 우정승으로, 윤환을 좌정승으로, 원호를 판삼사사로, 허백·황석기를 찬성사로, 전보문·한가귀로 삼사우·좌사로, 김일봉·김용·[[인당]]을 첨의평리로 각각 임명했다. 얼마 후 고의로 기철·권겸·노책의 일당을 놓아준 혐의로 원호·한가귀와 면성군 구영검을 하옥시켜 처형한 다음 그 가산을 적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