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병역기피 (문단 편집) == 개요 == 병역기피([[兵]][[役]][[忌]][[避]] / Draft evasion, Draft dodging)는 [[병역]]의 의무를 피하려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병역비리]]와 묶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병역기피는 '''도덕적·법적·사회 정의의 정당성 따위의 이유를 막론하고''' 개인이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행위 자체를 일컫는 것이다. 참고로 현 대한민국 [[병역법]]상 징병, 소집에 대한 거부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현역병]] 입영을 기피한 뉴스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현역병]]을 안갔을 때만 병역기피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인 병역기피는 병역의 의무에 해당되는 [[병역판정검사]]부터 [[민방위]]까지 적용된다.[* 다만, 현역병을 갔다온 뒤, 예비군이나 민방위를 기피하다 적발될 경우, 생각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게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민방위는 과태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병역판정검사부터 현역을 거쳐 예비군까지는 국방부 및 병무청이 관할하기 때문에, 면탈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민방위는 행정안전부에서 관할하므로 이때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면탈행위에 대한 단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병역비리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근무하기 편한 환경에 배정되도록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련의 기망 행위가 병역법 위반에 해당된다. 대개 뇌물이나 빽을 쓰기 때문에 징집대상자와 대개 군의관이나 관련 공무원인 결정권자 양쪽 모두가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문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는 것만을 다루도록 한다. 그 외의 문제는 [[병역비리]] 문서로. 군 입대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므로 이런 현상은 군대를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징병제]]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북한]] 같은 일부 국가같이 [[여성징병제|남,여 모두 징병대상으로 한 곳]]을 제외하고는 남성만 징병대상으로 정해졌기에 남성에게만 보이는 현상이며 한 때 수 년동안 징병제를 시행하던 [[모병제]] 국가도 징병제를 시행했을 때에는 병역기피가 당연히 존재했다. 예컨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징집 거부가 병역기피에 해당하는 경우다. 한국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라 1950년대 휴전 이후에 별별 방법을 써가며 군입대를 안 하려던 이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고바우 영감]]에서도 이걸 풍자할 정도. [[파일:고바우영감(1083회).png]] [[고바우 영감]] 1083회 (1958년 3월 16일 [[동아일보]]) 실제로 이 때는 이런 수법을 쓰면서까지 군대 안 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지]]가 된 상이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북한의 재남침 위협이 컸던 때였다. 게다가 당시 [[군납비리]]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짬밥]]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사병으로 군대를 가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복무 규율도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고, [[구타]]와 [[가혹행위]]가 수시로 벌어졌으며 그에 따른 부상자들 및 사망자들도 많았던 때였다. 그것도 80년대 군대에서는 그런 일이 적은 --근데 이때도 경례 똑바로 안 한다고 개머리판으로 전입 온 신병의 머리를 찍는 미친 새끼는 꼭 있었다.-- 구타를 50년대에는 하혈할 때까지 때렸다고 한다. '''전투복 바지가 피로 젖을 때까지...''' 실제로 들은 증언이다.[* 흔히들 말하는 '''[[쌍팔년도]] 군대'''가 바로 이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2년까지 한국은 [[서력기원|서기]]가 아닌 [[단군기원|단기]]를 사용했고, 4288년인 1955년 시절의 열악한 군대가 바로 이 시기이다. 이 시절이 어느 정도였냐면 1954년부터 59년까지 국군에서는 연간 평균 2,4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https://live3-attachment.namuwikiusercontent.com/00434982101_20130309.JPG|#]] ] 이러니 입대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커서 이렇게까지 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고바우 영감의 작가인 김성환은 6.25 당시 입대하여 '''현역으로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병역기피는 [[병역거부]], 입영/집총거부와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