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잉 (문단 편집) == 역사 == 보잉은 1916년, 시애틀에서 창립주인 윌리엄 E. 보잉(William Edward Boeing, 1881~1956)[* 고향은 [[디트로이트]]이며 아버지는 독일 출신이다. 원래 성씨도 '''뵈'''잉(Böing)이었으나 움라우트를 oe로 풀어쓰면서 지금과 같은 철자가 되었다.]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때의 이름은 '태평양 항공기 제작사(Pacific Aero Products Co.)'였다. 1917년에 비로소 '보잉 항공기 회사(Boeing Airplane Company)'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잉은 초창기에 주로 수상비행기를 만들었다. 당시 항공기는 주로 나무로 된 뼈대에 방수천을 덧대서 기체를 만들었는데, 보잉은 예일대에서 목재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었고, 또 한 동안 목재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어서 이런 항공기용 나무 뼈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잉의 창립에도 일화가 있다. 윌리엄 보잉은 당시 비행기의 발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1910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merican Air Meet''' 이라는 곳에서 비행기를 타보려 했으나 자리가 하나 뿐인 비행기라 타지 못하고 5년 뒤인 1915년에 유니언 강에 조종사 [[http://www.helenahistory.org/Terah-Maroney.htm|테라 마로니]]에게 날개에 붙어서라도 탈테니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비행기를 탄게 원인. 그리고 비행기를 타 본 뒤에 한 말이 "자리도 부족한데 태워주시느라 수고 많았소.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이제부턴 제가 뚝딱뚝딱 조립해서 타겠소이다]]." 라고 하고서는 그 뒤에 시애틀로 돌아와 보잉을 차렸다고 한다. 2016년에 무려 보잉 창립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였다. 또한, 미국의 거대한 항공기 제작사 중 유일하게 파산하지 않고 수많은 회사들을 인수하였다. 대표적인 인수한 항공기 제작사로는 맥도넬 더글라스, 노스 아메리칸 록웰 등이 있다. 보잉은 회사를 창립하고 첫 엔지니어인 웡 트수를 영입, B&W로 불리는 보잉 최초의 항공기를 제작하였다. 초창기의 보잉은 제작한 항공기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업에 진출하였고, [[시애틀]] - [[밴쿠버]]간의 에어 메일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제 항공화물 운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1929년에는 유나이티드 에어크래프트 & 트랜스포트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여객 사업, 엔진 사업 등을 진행하여 입지를 넓혀갔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항공기 제작사의 항공사 소유 금지법이 개정됨에 따라 [[유나이티드 항공]]과 [[프랫&휘트니]]를 매각하게 되었고, 창립자인 윌리엄 보잉 역시 은퇴한다. 따라서 보잉은 다시 보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항공기]] 제작을 진행하게 된다. 세계대전은 보잉을 가장 강력한 [[군용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해 주었다. 다양한 [[명작]] 군용기를 판매하며 군용기 [[사업]]에 대한 의존도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되었다. 이때 주로 [[생산]]된 보잉의 군용기로는 [[전설]]의 [[폭격기]]로 불리는 [[B-17]], [[B-29]], [[B-47]] 등이 있다. 하지만, 군용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상업용 여객기에 대해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보잉은 247이라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의 [[DC-3]]에 밀려 매우 저조한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그 이외에도 [[보잉 247|247]], [[보잉 307|307]], [[보잉 314]], [[보잉 377|377]] 등의 여러 가지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경쟁사인 더글라스가 완전히 민항기 시장을 위해 개발한 것과 다르게 대부분이 군용기를 민항기로 판매하기 위해 수정한 것이고 성능도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여객기 제조사로써의 보잉은 인지도가 높지 못했다. 하지만, 보잉을 [[여객기]] [[제조업]]의 자타공인 최고로 만든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명작 [[제트]] 여객기이자 모든 [[제트]] 여객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707의 개발이다. [[보잉 707|707]]의 개발은 보잉의 사장이 민항기 개발을 놓고 고민하던 중, 자사의 [[폭격기]]인 [[B-47]]을 탑승해보게 되었고 제트 항공기의 편안함과 정숙성에 감명받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경쟁사인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와는 달리 제트 여객기가 미래의 주 교통 수단이 될 것이라 예측하여 중장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당시로써는 대형 [[여객기]]였던 [[보잉 707|707]]을 내놓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707의 초기 판매량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바로, 보잉은 [[군용기]] 제작사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고[* 제 2차 세계대전때 이름을 떨친 [[B-17]]과 [[B-29]]는 다 보잉사 제품이었고 특히 B-29는 진정한 의미의 전략 폭격기였다.], 보잉의 [[여객기]]는 좋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잉 707이 명작 여객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항공사]]들이 707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가 [[DC-8]]을 재빨리 [[제트]] [[여객기]]로 전환하여 개발하게 만들었다. 보잉의 [[보잉 707|707]]은 [[DC-8]]보다 높은 성능과 승객 만족도를 보여주며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를 누르게 되었고, 이때부터 보잉은 세계 최고의 여객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된다. 707의 대성공에도 보잉은 군용기 사업 역시 버리지 않았다. 보잉은 [[보잉 707|707]]의 원형인 367-80을 기반으로 [[C-135]]라는 [[미합중국 공군]]의 최초의 [[제트]] 수송기를 개발하며 수주를 따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공중급유기]]인 [[KC-135]]가 엄청난 판매를 진행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미국 공군의 차세대 [[폭격기]] 사업에도 진출하여 [[B-52]]라는 명작 [[폭격기]]를 개발하였고 이 두 기종은 현재까지도 미국 공군의 주요 기종으로 활동하고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073747.jpg|width=100%]]}}} || || '''함께 주기되어 있는 707, 737, 747의 프로토타입들'''[* 각 등록번호는 [[보잉 707#367-80|N70700]], [[N73700]], [[N7470]]으로 현재 N70700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N73700, N7470은 뮤지엄 오브 플라이트에 정태보존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9441.jpg|width=100%]]}}} || || '''공장에서 출고되는 727의 프로토타입'''[* 등록번호는 N7001U로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1991년까지 운항한 후 뮤지엄 오브 플라이트에 정태보존되었다.] || [[보잉 707]]의 대성공 후 보잉은 중거리 [[여객기]]를 제작해 달라는 [[항공사]]들의 요청에 따라 [[바다]] 위에서도 운항할 수 있도록 3발기로 제작한 [[보잉 727]]을 개발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에서 개발중이던 차세대 소형 [[제트]] [[여객기]]인 [[DC-9]]와 경쟁하기 위해 보잉에서 가장 성공적인 항공기가 된 [[보잉 737|737]]을 개발하게 된다[* 현재는 [[보잉 737 MAX/결함|이 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까였다.]. 1970-1980년대에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수송기 사업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록히드 마틴|록히드의]] [[C-5]]와 경쟁하는 화물기를 제작하였으나 [[C-5]]에게 패배하였고, 망연자실한 보잉은 이 기체를 폐기하려고 했지만 [[팬 아메리칸 항공]]의 요청에 따라 여객기로 개발하게 되고 이는 [[보잉 747]]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수많은 [[항공사]]에서 운용되는 중이며 항공업계에 큰 획을 그은 행보를 인정받아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y)'이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들면서 슬슬 일선에서 물러나던 707, 727의 대체 항공기 요구와 신흥강자인 [[에어버스]]의 [[A300]]이 성공을 거두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쌍발 여객기 2종을 개발하기로 하였고, 이는 [[보잉 757]], [[보잉 767]]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된다. 협동체와 광동체라는 점만 제외하면 쌍둥이나 다름없던 두 기종 중 757은 본가인 미국 항공사들에게 707과 727의 대체 및 대서양 횡단 노선용으로, 767은 적절한 사이즈와 성능 및 효율로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KC-767]], [[KC-46]], [[E-767]] 등의 군용기로도 생산되었고 현재까지 상업용 항공기로도 수주를 따내며 생산되고 있다. 또한, 여러 방위산업체들을 인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잉은 [[에어버스]]의 성공과 [[A320]], [[MD-80]]이 매우 많은 수주를 따내게 되면서 [[보잉 737]]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고, 747의 판매량 역시 줄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잉은 747의 개량형인 [[보잉 747-400|747-400]]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록히드와의 컨소시엄으로 [[F-22]]라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 개발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게 된다. 또한, [[맥도넬 더글라스]]가 최초의 중대형 항공기인 [[MD-11]]을 개발하자 보잉은 이에 맞서 [[보잉 777|777]]이라는 명작 항공기를 탄생시켰고 이 항공기는 [[맥도넬 더글라스]]와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압도하면서 보잉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A320]]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위하여 [[보잉 737 NG|Next-Generation 737]] 항공기를 개발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맥도넬 더글라스의 [[MD-90]]은 처참하게 망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보잉에게 일어난 가장 큰 일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DC-10]]의 연이은 심각한 추락사고, [[MD-11]]의 성능 부족으로 인한 판매 부진과 주문 취소, [[MD-80]]의 주문량 감소와 [[MD-90]]의 실패, 그리고 맥도넬 더글라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힌 [[미국]] 공군의 공격기 사업 취소로 인하여 [[회사]] 자체가 휘청거리던 상황이었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의 군용기를 상당히 탐내었고, 맥도넬 더글라스를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맥도넬 더글라스는 보잉의 인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성사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초거대 [[방위산업체]]로 거듭났다. 이 합병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 [[에어버스]]의 미래 항공기 판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잉 로고 옆의 날개 모양은 맥도넬 더글라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으로 수많은 생산 라인들은 확보하였다. 먼저, 맥도넬 더글라스 상업용 항공기를 제작하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을 소유하면서 [[MD-11]], [[MD-80]], [[MD-90]], [[보잉 717|MD-95]]의 생산 라인을 보유하게 되었고, 보잉은 경쟁력이 없는 [[MD-11]], [[MD-80]], [[MD-90]]은 모조리 단종시키고 개발이 거의 끝나가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던 [[보잉 717|MD-95]]를 폐기하기 아까웠던 보잉은 [[보잉 717]]이라는 이름으로 MD-95를 리브랜딩 하면서 롱비치 공장에서 보잉 717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보잉의 [[맥도넬 더글라스]] 인수의 주 목표는 군용기 라인업 보유였으므로, 현재 보잉은 상당히 많은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맥도넬 더글라스]]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수송기인 [[C-17|C-17 글로브마스터 II]], 명작 전투기인 [[F-15]], [[F/A-18]], [[F/A-18E/F]]의 생산 라인과 맥도넬 더글라스의 전투기 생산 공장인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 공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AH-64]], [[하푼]], [[팬텀 웍스]] 등을 보유하게 되어 기존의 매우 부실한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던 보잉이 [[록히드 마틴]]에 이어 2번째로 큰 군용기 라인업을 보유하게 해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