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잉 (문단 편집) === 합병후 후폭풍 ===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한 1996년 이전까진 보잉은 무조건 엔지니어가 먼저인 회사였다. [[보잉 737 MAX/결함|보잉 737 MAX 결함사태]] 이전 순전히 보잉의 설계과실인 사고는 [[보잉 737 방향타 결함 사건]] 중 추락사고 2건과 준사고 1건, 그리고 [[라우다 항공 004편 추락 사고]] 정도 뿐이었다.[* 다만 엔지니어가 우선되던 시절에도 경영진들은 [[책임전가|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행태]]를 보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위의 두 사건 모두 보잉이 초반에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다가 주변 압박에 의해 뒤늦게 인정한 케이스이다.] 그 이전에도 기체에 문제가 있어 추락한 사고들은 분명히 있지만 해당사고들은 당시 항공기술상 한계 때문에 발생한 사고가 대부분이었고 엔지니어들과 보잉은 그러한 사고가 날 때마다 개선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또한 만약 개발 중이거나 제조 중인 기체에 아주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즉시 개발과정과 제조를 중단하고 문제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회사였다. "다운폴: 더 보잉 케이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다큐를 보면, 이전의 보잉은 말단 기술자라 하더라도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얼마든지 상부에 문제점을 건의할 수 있는 회사였으며, 의사결정을 하는 상부 또한 엔지니어링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그러한 건의사항을 적극 수용했다는 여러 전직 직원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보수도 후했으며 직원 대우도 좋았고 소속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뛰어났다고.[* 해당 다큐를 보면, 보잉에서 회사 로고가 찍힌 단체복을 나눠줬는데 다들 "누가 이걸 입고다니냐 ㅋ" 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옷을 입고나가면 보는 사람들마다 "보잉 다니는군요!!라고 해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는 전직 직원의 인터뷰도 있다.] 말 그대로 한 가족 같은 느낌으로 말단 엔지니어부터 이사진까지 함께 일했던 기업이 보잉이었다. 그러한 엔지니어 우선 기조 덕분에 [[보잉 747]]이라는 항공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항공기가 단 한건의 중대 설계결함[*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의 경우 유나이티드 항공의 과실로 결론지어졌다.] 없이 하늘을 누빌수 있었고, [[보잉 777]]이라는 명품 여객기가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맥도넬 더글라스 합병과 [[제너럴 일렉트릭]] 출신 인사들이 이사회에 편입되면서 보잉의 변화가 시작됐다. 1996년, 보잉과 맥도넬 더글라스의 합병 이후 멕도넬 더글라스 출신 임원들은 보잉을 좀먹기 시작했다. 멕도넬 더글라스 CEO였던 해리 스톤사이퍼는 경영악화 상태였던 MD사를 [[잭 웰치]]식 구조조정을 통해 주가를 4배나 뻥튀기 한뒤 보잉에 팔았다. 원래 스톤사이퍼는 [[GE]]에 27년간 재직했고 MD의 CEO에 오르자 마자 구조조정과 금융확장이라는 GE의 경영방식을 활용하여 MD의 경영개선에 성공했다. 스톤사이퍼를 위시한 구 MD이사진들은 보잉과 합병하자 마자 보잉 이사진을 장악한 뒤 2003년 바지사장이였던 필 콘딧이 물러나자 실세였던 스톤사이퍼가 결국 보잉의 CEO가 되었다. 2001년 보잉 경영진들은 보잉이 창립할때부터 있던 [[시애틀]]을 떠나 [[시카고]]로 옮긴다는 발표를 했다. 당연히 보잉직원으로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은 미친거 아니냐며 난리가 났다.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는 이유는 임원들이 시애틀의 엔지니어들의 방해 없이 재정 관련 결정을 편히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보잉은 직원 약 4만여명을 해고했고 항공기를 만들다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보고했다는 이유 만으로 품질 담당자를 해고하거나 징계를 하기도 했다. 스톤사이퍼는 2005년 스캔들로 물러나지만 그 후임으로 [[보잉 777]]에 [[GE90]]엔진을 독점 장착하는데 공을 세운 GE의 사장이였던 제임스 맥너니[* 1982년부터 2000년까지 GE에 재직했으며 2001년부터 보잉 CEO가 되기전인 2005년까진 [[3M]]의 CEO로 재직했다. 3M에서도 GE재직중에 배웠는지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 원인으로 회사가 탈이 난건지 현재 참전용사들의 불량 귀마개 관련 집단소송으로 시총을 뛰어넘는 배상금을 지급해야할 위기에 처했다.]가 취임하면서 2015년 물러날때까지 금융확장과 구조조정이라는 GE, 즉 잭 웰치식 경영문화를 이어나갔다. 이들은 보잉의 강력한 엔지니어 인력풀을 점차 해체하면서 [[월가]]의 금융인들과 딜 할 수 있는 금융인력을 확충하는 변화를 택했고 공돌이들의 회사였던 보잉은 결국 탁상공론이나 하는 상경계 출신의 비전문가들로 회사가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조업 회사가 본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보면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또한 안전이 최우선인 항공기 생산에는 맞지않는 경영방식이였다. 이후 보잉은 끊임없이 추락을 거듭했다. 2014년 [[알자지라]]에서는 보잉의 작업자들이 '''랜딩기어 부품을 안끼운채 조립을 해버리는''' 등 품질문제[* 이외에 [[보잉 787 드림라이너|B787]] 스테빌라이저트림 작동부에 작업자들이 오르내릴때 쓰는 사다리를 넣은채 비행기를 날리거나 파손된 배선을 그대로 사용하는등의 폭로가 있었다.]를 폭로한 적이 있다.[[https://youtu.be/rvkEpstd9os|#]] 특히, 보잉의 전성기시절 엔지니어 사상을 그대로 갖고있는 후발주자인 [[에어버스]]가 2003년 보잉의 연간판매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 보잉과 에어버스는 판매량을 갖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 2010년, 에어버스가 야심작 [[A320neo 패밀리]]를 출시했다. 이후 다급해진 보잉은 이미 40년동안 사용한 보잉 737을 한번 더 사용하기로 하고 [[보잉 737 MAX]]를 출시했다. 보잉 737 MAX는 이후 A320neo 패밀리의 판매량을 가파르게 쫓다가 [[라이온 에어 610편 추락 사고]]와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추락 사고]]를 냈다. 이후 미공군과 계약한 [[KC-46]]의 품질과 결함, [[보잉 787]]의 동체 제조공정 결함과 불량부품으로 인한 인도중지 (보잉 787의 양산 초기에 있던 각종 불량과는 별개의 건이다.), [[T-7A]] 훈련기 윙락 문제로 인한 납기 지연, [[777X]]의 노즈들림현상으로 인한 납기 지연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어찌보면 GE의 쇠락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으나 차이점이 있다면 GE는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다우 존스 지수]]에서 퇴출되고 회사가 쪼개지는 선에서 끝났다면 보잉은 737 MAX 사고로 인해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된 더욱 끔찍한 결과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보잉 737 MAX]] 사고와 관련된 망언으로 사퇴압력을 받은 끝에 데니스 뮬렌버그가 해임된 뒤 새로 취임한 데이브 칼훈도 GE출신 인사로써 스톤사이퍼나 맥너니가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 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한 만큼 둘과는 다른 경영을 할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일단 칼훈은 취임하자마자 보잉의 자사주 매입을 중지했고 737 MAX 또한 그라운딩이 풀리고 2022년 기준으로 주문량이 2018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2023년 2월에는 스톤사이퍼와 맥너니가 기존에 보잉의 자산이였던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확장시켜놓은 재무-금융부서 직원들을 인사과 직원과 함께 2000여명 해고하기로 함으로써 망가져있던 엔지니어링과 제조부분에 대한 인력확충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