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생 (문단 편집) == 평가 == 사서에서 부생은 잔학한 폭군으로 기록되었으나 방계로써 직계의 제위를 찬탈한 부견에 의해 재위기간중의 행적이 과장,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오호십육국 시대에 부생만한 폭군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과 달리 부생은 여러 사학자들로부터 실제 폭군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재평가를 계속 받고 있긴 때문. 《낙양가람기》에서 부생은 긍정적인 군주였으나 부견에 의해 폄하되었다고 기록했고, 당나라 시대의 사학자인 유지기(劉知幾) 또한 자신의 저서 『사통』에 부생이 억울하게 무고당했음을 강조했다.[* 유지기는 측천무후실록 편찬에 참여했다가 궁궐 사관들이 권력자 눈치 보며 역사를 기록하는 현실에 분노해 뛰쳐나온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정보를 수집한 뒤 역사비평사인 『사통』을 편찬했다. ] 근현대 중국의 4대 사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뤼쓰몐(呂思勉) 교수 역시 부생이 민가를 돌아다니며 학살한 일화나 칼과 망치로 대신들을 위협한 기록은 당대 사관의 의도적인 모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록의 진실성을 의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