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위 (문단 편집) === 건국 === [[선비족]]의 한 갈래인 '''[[탁발부|탁발선비]]'''(拓跋鮮卑)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나라였다.[* 탁발선비는 종종 '''타브가치'''(tabgachi)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 둘은 물론 동일한 집단의 다른 표기로 여겨지나 엄밀한 의미에서 타브가치와 탁발선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즉 타브가치의 원 발상지는 대흥안령 산맥 북쪽의 알선동(嘎仙洞)이었는데, 이후 북중국과 인접한 내몽골 지역으로 집단이 이동하면서 서요하와 동몽골 지역에 본래 거주하던 선비족 집단과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권 -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의 <알선동> 파트 참조.] 315년 사마씨의 서진 정권으로부터 하사받았던 기존의 국호인 '''[[대(오호십육국시대)|대]]'''(代)[* 대나라는 본래 춘추전국시대 산서성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국가였다.]를 386년 태조 [[도무제]] 탁발규가 '''위'''(魏)'로 바꾸고 칭제건원했다. 탁발선비족이 예전에 조위에게 조공을 바쳤던 적이 있고, 옛 조위가 처음 시작된 봉토였던 하북에 도읍하여 '위나라'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일단 북위 사람들은 서진으로부터 분봉받은 대나라의 후예로써 자신들이 옛 [[서진]]을 이은 진짜 중원의 정통왕조라고 생각했고, 남쪽의 [[동진]] 등 한족의 남조는 [[도이|'''섬 오랑캐'''(島夷)]]라고 부르며 멸시했다. 때문에 《[[북위서]]》 같은 이 시기 사서에 동진의 시조인 [[원제(동진)|중종 원제 사마예]]를 두고, [[우금(서진)|우금]]과 사마예의 어머니인 하후광희가 사통해 낳은 아이가 사마예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거나 동진은 가짜 사마씨라는 의미로 '''참진'''(僭晉)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동진의 정통성 부정과 본인들의 정통성 숭조의 이유로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후연]](後燕)의 황제 [[모용수]]는 탁발선비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쳐들어왔지만 도리어 395년 '''[[참합피 전투]]'''에서 대패하며 제대로 자존심을 구겼다. 북위는 이를 계기로 힘의 균형이 역전되기 시작한 틈을 타 397년 후연의 수도 중산을 무너뜨리면서 본격적으로 화북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산이 함락당한 이후 후연은 상당한 내분을 겪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도무제 탁발규에게 얻어맞고 난 시기에 [[고구려]][[광개토대왕]]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분열되고 말았다. 그 여파로 인해 요서의 [[북연]]과 산동의 [[남연]]으로 나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