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위 (문단 편집) === 정복군주 세조 [[태무제]]의 화북 통일 === 제3대 황제인 세조 [[태무제]] 시기에 [[북하]], [[북연]]과 [[북량]]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했다. 이때 한족 관료로서 북위 조정에 몸담고 있었던 [[최호(북위)|최호]]의 '''국사필화(筆禍)사건'''이 터져 청하 최씨 일가 및 그와 관련된 한족 귀족 세력들이 대거 처형 및 숙청되었다. 그 후 북위는 남조와는 달리 황제권이 귀족과 대등하거나 좀 더 우위에 있는 경향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이 남북조 간 국력이 차이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는데 남조의 경우, 귀족들의 집안 싸움 + 황실의 개판 정치로 나라가 도통 하루도 조용하질 못했다. 다만 북위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보이는데 예를 들어 북위의 역대 군주들은 기록이 좀 적다. 남조의 경우 유송 [[전폐제(유송)|전폐제]]의 재위기간은 1년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지른 악행이 빼곡히 기록되었지만 북위의 황제들은 도무제, 태무제, 효문제 등 몇몇만 빼면 기록이 부실하며, 특히나 북위의 황제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젊은 나이에 붕어했다. 비슷하게 전한 말기, 후한 중기~말기, 조위 말기, 손권 사후의 오나라, 남조의 역대 왕조, 북제, 북주 등의 사례를 들어 보면 이는 북위 역시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을 수가 없는 나라인 것을 암시한다. 특히나 북위 말기에는 [[선무영황후 호씨|호태후]]와 숙종 [[효명제]](제9대) 간의 권력 다툼, 호태후의 효명제 독살, 이후 [[효명제의 딸]]을 황제로 추대했다가 [[원조(북위)|원조]]로 바꾼 일, 근친상간을 한 제14대 [[효무제(북위)|효무제]] 등 북위 황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분열 이후의 [[북제]]와 [[북주]] 황실도 막장[* 북주의 경우 [[우문호]]의 전횡과 선제 우문윤의 실정이 있고, 발해 고씨의 북제는 제대로 된 황제 노릇한 사람은 죄다 비정상이었다.]인 걸 감안하면 북위 역시도 막장끼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사실 이게 결정적인 문제인데 땅만 보면 남조가 북조보다 더 강할 거 같지만 실상 미개척지도 많았고 앞서 말한 대로 귀족들이 사분오열되어서 강역에 비해 실제 지배 범위는 좁았다. 현대 중국의 경우, 옛 남조의 중심지인 [[장쑤성]], [[저장성]], [[상하이시]] 등 [[강남(중국)|강남]] 지방이 중국에서 제일 잘 살고 인구가 많은 지역이긴 해도 중국 전체로 봤을 때 이들 강남 지역과 [[광둥성]]을 제외하면 [[양쯔강]] 이남보다 이북의 인구밀도가 훨씬 높은데 당대엔 오랜 기간 더 개발되어 온 쪽이 북조의 [[화북]]지역이었으므로 당연히 기존의 발전도를 토대로 국력의 우위를 점했을 것이 당연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