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틀즈 (문단 편집) == 상세 ==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이자 전 세계 록 음악의 상징과도 같다.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비틀즈의 등장은 [[https://www.soundoflife.com/blogs/mixtape/6-ways-the-beatles-changed-the-world-of-music-forever|대중음악의 전과 후를 나눈다는 평론이 주될 정도]]로[* 아예 대놓고 [[https://www.mk.co.kr/news/all/6720917|“팝 음악의 역사는 비틀즈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쓰인 팝은 장르로서의 팝이 아니라, [[대중음악]](Popular Music)의 약칭인 '팝'이다. 비틀즈 정보가 제한적인 [[한국]]에도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저 문장에서 '비틀즈' 단어를 [[선동|다른 이의 이름으로 바꿔서 쓰는 자들]]이 있는데, 보통 글삭튀를 하지만 대놓고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대중음악을 바꿔놨으며, 대중음악의 인식을 바꾸면서[[https://www.nytimes.com/2014/02/02/arts/music/beatle-fans-hear-yesterday-again.html|#]] 대중음악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꿨다고 평가받는다.[[https://www.bbc.co.uk/bitesize/guides/zhyf3k7/revision/1|#]] 현재도 음악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음악계는 물론 사회, 문화계에서도 그 자체로 전환점[* [[브리티시 인베이전]], [[문화적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어준 [[록 음악]] 등, [[세계화]], [[https://en.wikipedia.org/wiki/Counterculture_of_the_1960s|반문화(Counterculture)]], [[포스트 모더니즘]], 정치적 자유, [[비틀즈/평가와 영향력|사상]], 젠더 혁명, 패션, 영화, 종교, 문학, 예술 등, 그리고 기성 [[가치관]]과 [[관습]]의 타파와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큰 역할을 했다. 비틀즈 자체가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쓰였다.]을 찍으면서 새로운 [[https://www.grin.com/document/911176|현대 사회로 변화를 이끌었다.]] 그들의 등장은 20세기 사회 문화사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https://www.cbsnews.com/news/when-the-beatles-changed-everything/|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그룹]]으로,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1957년 [[존 레논]]이 조직한 고교 밴드 쿼리멘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몇번의 밴드 멤버 교체를 겪다가, [[폴 매카트니]]와 그의 친구 [[조지 해리슨]]이 가입하였으며, 1962년 최종적으로 [[링고 스타]]가 영입되면서 밴드가 완성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함부르크]]의 클럽을 전전하며 실력을 쌓았고,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EMI]]소속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Love Me Do]]라는 첫 싱글을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싱글의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비틀즈는 1963년 1집을 냈으며, 1집과 2집이 [[영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64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동시에 미국의 음반 시장을 점령하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비틀즈는 1970년까지 1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1968년경부터 멤버들 간의 음악적 갈등으로 밴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8년 만에 해체한다. 해체한 지 50년이 넘어가는 밴드이고, 활동 기간도 겨우 7년 6개월 정도로 유명 록밴드들 중 굉장히 짧은 축이지만[* 역사상 족적이 크다고 평가받는 대다수의 록밴드들은 활동을 굉장히 긴 편이다. [[롤링 스톤스]], [[더 후]], [[핑크 플로이드]] 등의 밴드들은 거의 40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롤링 스톤스와 더 후는 현재까지도 현역이다.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정도가 이례적으로 활동 기간이 짧은데, 재미있는 점은 이 두 밴드가 각각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밴드 1, 2위라는 것.], 비틀즈는 [[록 음악]]뿐만 아니라 비틀즈 이후의 대중음악 대부분의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이다.[* 전체 2위는 엘비스 프레슬리이나 비틀즈와 판매량 격차가 매우 크다.] 데이터 분석 결과, [[https://qz.com/1094962/a-definitive-list-of-the-musicians-who-influenced-our-lives-most|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그룹 포함, 모든 멤버가 개별적으로 등극했다. 이런 경우는 역사상 유일하다고 한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비틀즈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현대 [[대중음악]]의 시대가 시작된다 할 수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등 40~50년대 대중음악 아티스트가 없던건 아니지만, 비틀즈 이전에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잦았을 정도로 클래식의 영향력이 컸다.[[:파일:external/gigaom.com/timeline1.jpg|#]]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앞서 평론 등에서 언급했듯이 대중음악에 기준을 정립했으며, 현대 대중음악의 기반을 만들었다. 자세한 것은 [[비틀즈/평가와 영향력]]] 1960년대 초중반에도 [[로큰롤]]의 부활과 대중음악 시장의 대호황, 문화적 파란을 일으켰어도, 음악적으로는 [[척 베리]]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시로한 로큰롤에 큰 영향을 받은 [[로큰롤]] 아이돌 밴드였다. 그러다 현대 대중음악계 최초로,[* [[재즈]]나 영화 사운드트랙 음반을 제외한 록, 팝 음악 등등을 기준하여 최초라고 지칭한다.] 단순히 싱글곡 모음집이 아닌 앨범 자체에 예술성을 불어넣은 [[Rubber Soul]]을 만들어 "앨범시대"를 열면서 새로운 [[대중음악]]의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특히 1965년 이후 제작한 앨범들은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1966년 역사적인 [[Revolver]]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하프시코드]], 드론 사운드, [[시타르]], [[리코더]], [[역재생]] 등 다양한 악기와 방법으로 소리를 사용하여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며 "실험음악과의 장벽"을 허물었고, 기존의 연애만 노래하던 가사에서 [[인류애]], [[사회]], [[인생]], [[평화]] 등을 노래했는데 [[https://faroutmagazine.co.uk/how-literature-shaped-the-music-of-the-beatles/|이러한 비틀즈의 시도들은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기존의 [[로큰롤]], [[팝]], [[블루스]]같은 장르뿐만 아니라 [[사이키델릭 록|사이]][[사이키델릭 포크|키델릭]] [[사이키델릭 팝|음악]], [[포크 록]], [[프로그레시브 록]], [[팝 록]], [[아방가르드 음악|아방가르드]], [[헤비 메탈]] 등 실험적인 장르들까지 시도한다. 그리고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시작으로 모든 연령층에 [[록 음악]]으로 대표됐던 "대중음악의 인식"을 끌어올렸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의 현대 대중음악 역사에서 성별,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장르의 음악을 대중적으로 즐기게 만든 것이다. [[너바나(밴드)|너바나]]와 같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는 물론, [[에이브릴 라빈]]같은 [[팝 펑크]], [[포스트 말론]]같은 [[힙합]], [[메탈리카]]같은 [[헤비 메탈]]과 [[에드 시런]]같은 [[팝 음악|팝]] 아티스트도 비틀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일렉트로닉 뮤직]][* 대중음악계에서 처음 전자음악적인 색채를 띄우기 시작한 건 1960년대 후반 비틀즈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영향을 받은 여러 음향실험을 [[페퍼 상사]], 화이트 앨범 등에서의 적용부터다. 이 시기 대중적으로 전자음향 기법을 각인시켰다.]과 [[힙합]][* [[사이키델릭 록]]이 바탕인 [[Lil Yachty]]의 23년 신작 [[Let's Start Here.]]도 그렇고, [[Tomorrow Never Knows(노래)|Tomorrow Never Knows]]은 일렉트로니카/힙합/댄스 분야 전문의 영국 음악 매거진인 Muzik지가 선정한 ‘테크노/힙합 음악의 탄생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명곡 50선’ 중에서도 [[http://www.rocklistmusic.co.uk/muzik.htm#50%20Most%20Influential%20Records|최초의 곡]]으로 꼽혔다.], [[펑크 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비틀즈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언급한 음악가만 해도 [[핑크 플로이드]], [[주다스 프리스트]], [[브루스 스프링스틴]], [[블랙 사바스]], [[카펜터즈]], [[데이비드 보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라몬즈]], [[퀸(밴드)|퀸]], [[빌리 조엘]], [[라디오헤드]],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 [[너바나(밴드)|너바나]], [[셀린 디옹]], [[그린 데이]], [[레이디 가가]], [[마룬 5]], [[앨리샤 키스]], [[존 레전드]], [[노라 존스]],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포스트 말론]], [[빌리 아일리시]], [[해리 스타일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아티스트들은 전부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블랙 사바스는 [[헤비 메탈]],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하트랜드 록]], 너바나는 [[그런지]], 그린 데이는 [[펑크 록]],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은 [[슈게이징]], 라디오헤드는 본인 특유의 진취적인 음악, 퀸은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오아시스는 팝이나 [[얼터너티브]]에 가깝고, 앨리샤 키스와 존 레전드는 [[R&B]]와 [[소울]] 아티스트이고, 노라 존스는 [[재즈]]다. 포스트 말론은 [[힙합]]이고,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빌리 아일리시는 [[팝 음악|팝]] 스타로 불리는 아티스트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비틀즈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나 오아시스의 경우 비틀즈의 영향을 앞의 밴드들과 비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받은지라 거의 비틀즈를 신에 가깝게 대접한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야드버즈|뿌리]]가 비틀즈 데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드 제플린]]도 음악적 부분은 적어도 관리 및 경영 방식은 비틀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음악가들이 있는데, 키보이스, [[조용필]], [[신중현]], 펄씨스터즈, [[들국화]], [[이적]], [[장기하]], [[잔나비]], [[혁오]] 등이 있다. 이러한 점과 후술할 이유들로 음악 저널/평단/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기타계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드럼계에서 [[존 본햄]]이 고정 1위로 꼽히는 것처럼, 록 밴드 및 장르 불문 올타임 아티스트에서는 비틀즈가 항상 1위로 꼽힌다. 비틀즈는 대중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빌보드]] [[빌보드 핫 100|싱글]]/[[빌보드 200|앨범]] 최다 1위 기록에, 월간 이용자 4억 9천만명대의 [[스포티파이]] 서비스가 가장 늦게 시작된 편인데도 2015년 12월 24일 시작 후 3일간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됐으며, 바이럴 차트 50위안에 38개 곡을 올려놓는다. 현재 듣는 연령대도 64%~69% 이상이 34~35세 이하다.[* [[https://www.cnbc.com/2019/10/26/the-beatles-remain-a-pop-culture-phenomenon-even-among-gen-z-fans.html|그중에서도 30%가 18~24세, 17%가 25~29세다.]] 2022년에 출제된 논문에서 인용됐다는 [[스포티파이]] 데이터에서 30대 중반 이하 연령층에서 2% 이상이 올랐다고 나와있으나, 저 부분이 34세 언더 62%를 지칭하는 건지, 35세 언더 67%를 언급하는 것인지 혼란이 오므로 수치를 저렇게 표기한다.] 그리고 2023년 실시간 기준 [[https://chartmasters.org/most-streamed-artists-ever-on-spotify/|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 순위에 43위권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 이전 아티스트 중, 비틀즈보다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는 31위권의 퀸말고 없다.][* 참고로 10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솔로 커리어 스트리밍 횟수까지 모두 더하면 24위이다.] 아직까지도 엄청난 음반/음원이 팔리고 있으며[* 2022년 기준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서 그 해 발표된 음반/음원이 아니라도 그 해에 판매되었으면 순위에 반영, 디지털/물리적 음반, 음원 모두 반영한 Global Recording Artist of the Year 순위에서 19위로, 2000년대 이전 아티스트 중 유일하게 20위 안에 들었다.[[https://www.ifpi.org/taylor-swift-named-ifpis-global-recording-artist-of-the-year/|#]] 빌보드에서 집계한 2022년 기준 실물/디지털 앨범 판매량 합산 순위에도 유일하게 7위에 들었다. 2021년, 2020년에도 8위, 6위 등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대중들이 알고 있는 외국 음악가 중 [[마이클 잭슨]]과 함께 대중적 인지도가 제일 높다. 다른 비슷한 시대의 록밴드인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더 후]] 등부터 1960~90년대 록 음악/팝 음악이 성공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매니아층만 알고 인지도가 낮지만, 비틀즈는 당연히 예외이다.[* 단, 대한민국에서는 비틀즈의 이미지 중 60년대 초의 팝, 로큰롤 이미지가 다소 강하고, 비틀즈의 노래들 중에서도 Yesterday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최고의 걸작들이 모여 있는 60년대 후반 앨범들의 인지도는 영미권과 정반대로 낮은 편이다. 아무래도 비틀즈가 순회 공연을 통한 대중적 전성기를 이뤘던 건 엄연히 1960년대 중반이고, 무엇보다도 당시 대한민국은 검열이 심했던 편이라 마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1960년대 후반 당시 유행했던 장르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비틀즈의 60년대 후반 앨범들조차 다른 60년대 음악가들의 앨범보다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건 변치 않는다.] 대한민국 광고 혹은 예능에서 나오는 곡들 중에서 이거 들어봤는데 하는 곡들 중에서 꽤 많은 곡들이 비틀즈의 곡임을 알 수 있다. 비틀즈 노래들의 저작권이 온갖 곳에 다 퍼져 있어[* 당장 마이클 잭슨이 비틀즈의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소유한 비틀즈 음악 저작권은 일부이며 어떤 곡은 비틀즈 4인방 모두가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지 않을 정도이기도 하다. 당장 빌보드 역사상 가장 제목 길이가 긴 1위 곡인 메들리 Stars on 45의 제목이 그렇게 된 이유가 비틀즈의 골때리는 저작권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저때는 그나마 비틀즈 곡들의 저작권이 지금보다는 덜 퍼져 있었을 때였다.] 저작권료가 골 때리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하다. 음반 판매량으로 보아도 막대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앨범도 비틀즈의 앨범인 "[[1(음반)|1]]"이다.[* 즉 [[콜드플레이]], [[에미넴]], [[테일러 스위프트]]의 수많은 히트작 음반들보다 해체된지 30년이 넘은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이 더 많이 팔려서 2000년대 통산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이는 전례가 없는 엄청난 기록이다. 다만 [[2000년]]은 21세기에 포함되지 않아 21세기 통산 1위는 [[아델]]의 21이다.] 정규 앨범도 아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만 200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을 판 것이다. 1960년대에 그 인기는 엄청나서 [[1965년]] 미국에서 판매된 음반의 60%가 비틀즈의 음반이었으며,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이 있는 날에는 청소년들이 모조리 비틀즈의 공연을 보러가 청소년 범죄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믿기 힘든 일도 있다. 요즘 세대에도 인기가 매우 높은데 가장 인기 있는 록밴드 투표를 하면 대부분 1위로 꼽힌다.[* 한국에서 2등은 보통 [[퀸(밴드)|퀸]]이 꼽히며, 서구권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2등으로 꼽힌다.] 또한, 비틀즈는 역대 음반 판매량 1위라는 기록도 있는데, 약 6억 장 정도를 판 것으로 추정되며, 무려 10억 장을 팔았다는 자료도 있다.[* 이는 2위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1억 장 차이로 상회하는 것이며, 록밴드로만 따질 시 약 3억 장 이상을 팔아 2위를 차지한 [[레드 제플린]]을 2배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는 것이다.] [[빌보드 200]] 차트 누적 기록으로도 1위/5위권/10위권 모두 최장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970년]] 해체 후 나온 앨범으로도 197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UK 차트]]에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모든 디케이드에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비틀즈는 문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화계에서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비틀즈가 나오던 1960년대 초중반까지를 현대적인 시기가 아니라 과도기로 인식하며,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1963~1964년에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 있던 배우가 고전 배우에 준하는 [[폴 뉴먼]]과 [[오드리 헵번]]이었다. 이 시기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켜 [[https://www.nytimes.com/2014/02/02/arts/music/beatle-fans-hear-yesterday-again.html|대중음악의 인식을 바꾸면서 문화를 납치했다는 평을 받는데]], 이 시기부터 대중문화 전반이 급격하게 격변하고, 비틀즈 유행의 후반기에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가 시작되어 영화계도 현대적으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https://edition.cnn.com/2014/01/30/showbiz/celebrity-news-gossip/beatles-ed-sullivan-50-years-anniversary/|비틀즈가 만든 자유로운 사회]]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가 어떤 사회였는지 [[패션]]과 [[종교]]로 설명하자면, 댄디와 미니 스커트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모즈 룩'이 반항의 상징이었으며, 머쉬룸, 몹톱컷으로 불리는 비틀즈의 헤어컷을 따라했다고 퇴학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공연을 막기도 했으며, 존 레논의 예수 발언으로 비틀즈의 앨범이 화형식을 당하고, 국제적인 라디오 보이콧, 바티칸에서 성명문을 내는 등의 일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소설 판매과 번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려진 추리 소설의 상징,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시대 소설에서도 비틀즈는 '딴따라'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비틀즈는 이전의 검열이 심하고 보수적이던 [[대중문화]]계를 몇 년 만에 자유롭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다. 이렇듯 비틀즈는 거대한 사회 현상이었으며, 당시에 아주 만연했던 [[인종차별]] 완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60년대는 인종차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이다. 인종 분리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던 시대인데, 이때 비틀즈는 역사상 대중 음악계 최초로 관중석 인종 분리를 부셔냈다. 1964년, 잭슨빌 게이터볼 공연 에피소드인데 공연장에 인종 분리가 있을 거라 들은 [[https://faroutmagazine.co.uk/the-beatles-fought-racism-segregated-audience-1964/|비틀즈는 공연을 거부하였고, 격렬한 대치 끝에 결과를 받아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있던 그들이 [[민권법]] 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흑인 뮤지션들과 협업도 자주 하며 지원해주는 등, 여러가지 행동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간에 반체제의 상징으로 받들여져, [[히피]] 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다.[* [[개인주의|일반적으로 어떠한 문화든 가치는 사회를 중요시하는데, 히피 문화는 자신, 자아를 중요시했다.]]] 이성보다 감성, 당시에 평화, [[반전주의]]를 대표했었다. 1967년 [[사랑의 여름]]에서 [[All You Need Is Love]]가 히피의 상징곡으로 꼽히기도 했고, [[히피]]들의 패션 역시 비틀즈 멤버들의 패션에서 유래했다. 히피 문화와 비틀즈에 집착하는 여성팬들로 생긴 그루피족 문화는 자유로운 [[성문화]]를 조성했으며, 성 개방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화들 말고도, [[1960년대]] [[https://en.wikipedia.org/wiki/Counterculture_of_the_1960s|반문화]]의 리더로 취급받으면서 많은 문화적 운동이 비틀즈의 지원을 받거나 영감을 얻었다. 이전 시대까지 철 없는 치기·일탈로 받아들이던 [[평화주의]], [[개인주의]], [[평등주의]], [[성해방]], [[세속주의]] 등의 사상들이 비틀즈로 인해 사회 문화의 주류 [[사상]]으로 인정받으며 여전히 인류의 중요한 이념으로 여겨진다. [[https://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2110513_2110627_2110708,00.html|패션 아이콘]]으로서, 당대부터 지금도 [[패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https://www.telegraph.co.uk/fashion/people/years-biggest-style-icons-beatles/|#]] 그 어떤 뮤지션보다 스타일이나 의류를 가장 크게 보편화한 뮤지션으로 뽑혔으며, 개별 멤버로도 [[존 레논]]은 여전히 [[https://vmagazine.com/article/8-times-john-lennon-was-an-absolute-style-icon/|스타일 아이콘으로 언급되고,]] 그의 스타일 등은 재생산되며 소비된다. 비틀즈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모즈 룩(Mods Look)'은 현대 [[정장]] 스타일의 기준으로 볼 수 있고, 댄디 스타일의 시작으로 지금도 [[패션]]업계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스타일이다.[[https://www.vingle.net/posts/1069447|#]] 그리고 [[터틀넥|터틀넥 니트]]도 영화계에서는 [[스티브 맥퀸]]이 있다면, 음악계에서는 비틀즈가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옷이다. 비틀즈 멤버들의 패션은 캐주얼 패션에 영향을 주면서 보편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비틀즈와 그들을 중심으로 커진 [[https://en.wikipedia.org/wiki/Counterculture_of_the_1960s|1960년대 반문화]]의 영향으로 10대-20대 중심의 [[패션]] 서브컬처가 주류 문화로서 발전한다. 그리고 반문화의 영향으로 [[미니 스커트]]의 발명과 대중화, 남녀 모두에게 [[청바지]]가 베이스가 된 스타일링이 대중화됐다. 또한, 이 시기의 반문화는 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으로 수면 위에 오르게 된 [[환경주의|환경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유일무이한 현상을 이끈다. [[냉전]] 시기, 소련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의 [[철의 장막]]에 침투한 비틀즈코드(비틀즈의 음악·패션 등)는 [[이념]] 대립과는 별개의 문제로 [[공산권]] 국가를 뒤흔들어 놓았다. 서구권에서는 젊은이들의 반항으로 여겨져 [[신좌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공산권]]에서는 "서구권 [[자유주의]] 문화"의 위대한 사례로 알려져 공산권의 반서구적이고 폐쇄적인 체제를 무너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프라하의 봄]] 당시 시민들이 [[Hey Jude]]를 시위대의 상징곡으로 사용했고, [[레논 벽]]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어떤 [[종교]]보다, [[베트남전]]이나 어느 전쟁이나 [[핵폭탄]]보다 [[냉전]] 확산의 가장 중요한 단일 원인은 비틀즈였다"라는 말을 남기며,[[https://www.thevintagenews.com/2016/09/30/priority-beatles-brought-soviet-union-destroyed-communism/?chrome=1|#]] "비틀즈로 소통하고, 개혁했다"[[https://m.blog.naver.com/gounikorea/220931393928|#]]라는 말도 남긴다. "[[소련]]은 비틀즈 때문에 무너졌다"라는 말이 비틀즈의 인지도가 비교적 바닥인 [[대한민국]]에도 전해졌을 정도다. 즉 비틀즈는 음악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면에서 모두 역사에 기록된 업적을 세웠다. [[타임]]에서는 비틀즈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빌보드]], [[롤링 스톤]] 등 매체에서는 비틀즈를 The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리스트에서 1위로 선정했다.[* 선정 내역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모든 매체가 역대 아티스트 순위에서 비틀즈를 1위로 선정한다.]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비틀즈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한국에 알려진 유명한 노래로는 몇 개 꼽자면 [[Yesterday]], [[Let It Be(노래)|Let It Be]], [[Hey Jude]], [[All You Need Is Love]], [[Ob-La-Di, Ob-La-Da]], [[Twist and Shout(비틀즈)|Twist and Shout]], [[I Want to Hold Your Hand]] 등이 있다. 물론 이 노래들 말고도 잘 알려진 곡들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다.[* 하필 잘 알려진 곡들이 대부분 [[팝 록]], [[소프트 록]] 성향의 곡이다 보니 유독 한국에서는 "비틀즈 그거 그냥 아이돌 팝 밴드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잦은 편이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록 음악]]은 곧 [[메탈(음악)|헤비 메탈]]이라는 편견이 존재하기에, 비틀즈를 비롯한 록 밴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속터지는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