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냥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Mammoth_Hunters_F-AW_600.jpg]] [[매머드]] 사냥을 하는 [[원시인]]. [[석기 시대]]는 물론, 이후 농경과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고기]], [[가죽]], [[뿔]], [[한약재]] 등을 얻기 위한 인류의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축 사육이 보편화되어 더욱 쉽게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된 근현대 이후로는 [[사냥꾼]],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일부 부족들, 현재도 생존형과 취미형이 둘 다 있는 [[낚시]]를 제외하면 생존보다는 [[레저]]를 목적으로 하는 사냥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고대 벽화들을 보면 활 사냥 그림들과 접근전 사냥 그림들이 같은 벽과 시대에 그려져 있다. 특히 똑바르고 길다란 몽둥이의 끝부분을 잡고 내려찍는 모습도 보인다.[* [[http://cont122.edunet4u.net/~kym920903/sunsa/bangu1.html|Korean bow & melee hunting]]] 또한 고고학적인 발견으로도 활이 발명된 이후의 시대에서도 창 등의 사냥 도구들이 계속 발굴된다.[* [[http://newdle.noonnoppi.com/xmlviewculture.aspx?xmldid=30980|Excavation of melee hunting weapons after bows were invented]]][* [[http://www.bbc.co.uk/schools/primaryhistory/ancient_greeks/home_life/|Bronze Age wine-bowl depicting hunting]]] 고대 국가에서는 군주가 사냥을 가겠다고 하면 신하들이 대부분 단체로 입을 모아 결사반대를 외친다. 군주의 사냥은 단순히 레저가 아니라 거의 국가적 이벤트라 군주는 물론 신하들까지 사냥에 참가해야만 한다. 게다가 군신을 호위할 병력들도 동원하고, 그들이 쓸 물자들도 넉넉히 갖추는 건 필수다. 그리고 사냥이 하루 이틀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니 더더욱 소모될 물자는 말 안 해도 뻔한 노릇이다. 게다가 군주가 사냥을 갈 임지에 사는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도 하지 못하고 군주가 사냥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갖가지 부역에 시달려야 한다.[* 사냥터까지의 이동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대체로 사냥터가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관을 통해 필요한 갖가지 물자들을 조달받았다. 또한 사냥을 와서 짐승을 많이 잡지 못하면 흥이 안나기 때문에(...) 휘하 군사 및 지역 백성들을 동원해 동물들을 몰아오는 몰이사냥을 했고, 때문에 군사들과 백성들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보다 악질은 '''이른 추수'''다. 사냥하러 가는데 농작물 때문에 말에서 굴러넘어지 수 있으니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작물을 억지로 수확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백성들 입장에서는 한해 농사를 거진 망친 꼴이다.] 당장 소모하는 물자도 물자지만 국가 경제로서도 장차 생산할 물자에 차질이 생기는 안 좋은 연쇄 효과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결정적으로 군주와 신하들이 나라를 안 돌보고 놀러나온거니 그동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괜히 군주가 사냥가는 것을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폭군 혹은 명군이 아닌 군주들 대부분 공통점이 사냥을 즐겼다고 나와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대의 사냥은 기본적으로 군사훈련, 특히 야지에서의 기동훈련을 겸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왕이 주재하던 정기 무예 훈련인 강무(講武)가 사냥의 형태를 띄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군들이나 명군이 아닌 군주들의 공통점이 사냥을 즐겼던 것이라고 하는데, 역사상 유능한 군주로 이름을 남긴 이들도 사냥을 즐겨했다. 사실 사냥을 즐기지 않은 군주가 더 드물다. 고대 아시리아 왕의 사자 사냥, 헬레니즘 군주들, 중세유럽 왕들,[* [[군주론]]의 경우 상술한 기동훈련+주변 지리 파악의 측면에서 대놓고 사냥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부분이 나온다.] 전쟁으로 날을 새던 한국의 삼국시대와 같이 상무적인 나라의 왕은 군사훈련을 겸해 사냥을 행하였다. 사냥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군주가 자신의 무위를 과시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천명하는 필수적인 행사였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군주의 사냥 자체는 군주 자신과 신하들의 무예를 기르기 위한 훈련이기도 했지만, 백성들에게 민폐 끼치는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인 만큼 종종 하긴 하되 어디까지나 적당히 해야 하는 노릇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 각주에서 인용된 군주론도 사냥을 '충분히' 하라고 했음을 상기하자. ~~[[태강|충분한 선을 넘어서 진짜로 나라는 안 돌보고 놀러다니는 정도]]면 그냥 노답이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