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북사건 (문단 편집) ==== 공수부대 투입계획 ==== 경찰들의 공격마저 사북 주민들의 저항으로 무산되자 경찰은 계엄당국에게 '''공수부대를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 참고로 사북사건이 일어나고 있던 1980년 4월은 비상계엄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선포되어 있을 때였다.] 요청을 받은 1군 계엄사령부에서 사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탓에 출동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1군 군수지원사령관에게 군 병력 300명을 출동준비시키고 영월, 정선 지역의 대대에 출동준비 대기를 지시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계엄당국이 공수부대 투입계획을 구상하고 검토'''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육군본부에서 발행했다는 <계엄사>에서는 계엄군 부대가 사북사건을 진압하고자 원주로 배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실제로 4월 23일에는 계엄사의 요청으로 공군 비행기가 정선 일대를 비행한 적도 있었다. 또 [[국군기무사령부]]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제출한 자료 <동원탄좌 사태 진전상황2>에는 더 구체적인 군병력 투입계획이 나와 있었으며 그 '''투입시점까지 결정나 있었다!'''[* 군대가 투입될 시점은 1980년 4월 25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4월 24일의 협상타결로 군부대 투입은 무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