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북사건 (문단 편집) == 노사정 협상 == [[파일:art_1474626844.jpg]] 사북이 광부들의 손에 넘어가자 회사와 정부는 광부들에게 협상을 제의했다. 그리하여 1980년 4월 22일부터 4월 24일까지 노사정 협상이 열렸다. 1차 협상은 4월 22일 오후 3시 삼척탄좌 객실에서 열렸다. 이 협상에는 강원도경 국장과 수사과장, 이재기 노조지부장, 광부대표 이원갑과 신경 등이 참석했다. 여기서 회사는 이재기의 사표를 받고 이원갑과 신경이 직접 광부들에게 가서 협상결과를 말하고 설득하기로 결론 났다. 하지만 광부들은 '이재기가 직접 나타나서 사의를 표명하라'며 반발했다. 2차 협상은 1차 협상이 있은지 몇 시간 후인 오후 7시 사북읍사무소에서 열렸다. 이 협상에는 소위 대책본부 소속의 광산노조 위원장과 광부대표 이원갑, 그리고 주민대표가 참석했다. 광부들은 노임과 상여금을 인상하고 형사처벌을 면제해달라며 요구했지만, 대책본부 측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6개항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이 조항들은 광부들이 제시한 조항과 비교하면 상당히 후퇴한 것이었다.] 4월 23일에는 대책본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조항들을 인쇄한 종이 1천여 장이 '합의문'으로 둔갑하여 광업소 주변에 뿌려졌다. 이에 광부와 주민들은 '합의문이 회사 측에만 유리하다'며 계속 항의했다. 이에 강원도경 국장은 광부대표 이원갑을 만나서 '''"협상대표로 참여한 광부들은 주동자로 몰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주었고, 회담은 23일 밤 다시 열렸다. 3차 협상에서 광부들은 '''"주동자들을 형사처벌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 말을 들은 춘천지검 검사는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어쨌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사태수습 후라도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요지로 답변했다. 밤새도록 광부 60~70여명과 대책본부 간의 협상이 이어지다가 4월 24일 최종적으로 11개 조항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최종 합의문'''[* <사북사태에 대한 진상>, 광산노조, 1980, 49-50쪽] > >1. 이재기는 이미 사퇴했음. >2. 부상자 치료비 및 보상금 일체는 회사에서 책임진다. >3. 피해 주택복구비도 회사에서 전액 부담한다. >4. 하청업자 종업원의 임금인상도 최대한 보장토록 노력. >5. 신용조합 운영에 있어서 부실한 원금에 대하여는 회사에서 지급한다. >6. 79년도 징계로 인한 상여금 삭감분은 즉시 회사에서 지급한다. >7. 이번 사태로 쉰 4일간에 대하여는 휴업수당을 지급한다. >8. 현재 250% 상여금을 400%까지 인상하여 분기별로 지급한다. >9. 1~2월 임금인상 소급분 20%는 5월 말까지 지급하고 탄가인상시 재조정한다. >10. 경찰당국은 이번 사태수습에 절대로 실력행사를 하지 않기로 한다. >11. 금번 사태에 대한 문제는 회사와 당국이 최대의 노력으로 원만히 해결하도록 한다. > >이상의 협의사항을 깊이 인식하고 상호 간의 이해와 협조로써 질서회복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1980.4.24 >광산노조 위원장 최00 >광업소장 류00 >'''후속조치'''[* <사북사태에 대한 진상>, 광산노조, 1980, 49-50쪽] > >동원탄좌개발(주) 사북광업소는 아래와 같이 확인한다. >1. 상여금은 250%에서 400%로 인상한다. >2. 1~2월분 임금인상 소급분 20%는 5월 말에 지급하고 탄가인상 때 재조정한다. >3. 임금인상 후 도급료 인상률을 보장한다. >4. 79년도 징계자 상여금 삭제분에 대하여 이를 지급한다. >5. 21일부터 24일까지의 4일간 노임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한다. >6. 부상자의 치료 및 가옥 파손 수리비용은 회사가 지급한다. >7. 신용조합에서 미지급된 해당 금액에 대하여도 회사가 부담한다. >8. 하청업자에 대한 것(노임 및 상여금)은 현재까지 독립된 업자 책임 아래 지급되었으므로 회사에서 가능한 한 업자 측에 건의하여 현재보다 향상 지급토록 한다. > >1980년 4월 24일 >동원탄좌개발 사북광업소장 유00 그렇게하여 나흘간 사북읍을 휘들었던 사북사건은 평화적으로 종결되는 듯 했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그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