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북사건 (문단 편집) === 계엄군에 준 영향 === >많은 사람들이 특전사 병력에게 부과된 국내 치안의 역할에 점점 더 염증을 느끼고 있음. 1979년 부산,마산 소요사태 당시 파견된 특전사 소속 장교와 사병들은 '머리를 깰'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럴 의지도 있었음. 가장 최근 원주에서 대기상태에 있었을 때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음. '''광부들의 의견이 옳다는 의견들을 피력한 바 있음. 광부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옳다는 것이었음.''' 학생데모 진압활동에 대해서는 이와 다소 다른 견해이긴 하나 적극적인 자세는 아님. 특전사가 학생들에 대한 발포명령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음. 그러나 그런 요구들은 '''특전사 내의 기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임.''' - 미 국방부 메시지센터가 1980년 5월 8일에 작성한 기밀문서[* <미국비밀문서로 본 한국현대사 35장면>, 이홍환 편저, 삼인, 2002, 64쪽] 이 문서를 보면, 아마도 사북사건 진압을 위해 대기 중이었던 계엄군 장교와 사병들은 명령에 따르기는 했지만 상부의 그런 명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에 [[5.18 민주화운동/학살|계엄군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그런 조짐이 있었다 하더라도 신군부가 가만히 놔두었을리는 만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