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비성 (문단 편집) ==== 왕궁 ==== 관북리, 쌍북리 유적, 몽촌토성 및 왕궁리 유적과의 관련성 사비궁의 위치는 현재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관북리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형건물지와 기와기단건물, 창고, 연못, 배수로, 우물, 공방 등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왕궁리 유적]]에서만 나오는 수부(首府)명 기와가 발견되고, 대형건물지가 왕궁리 유적 건물지와 일치하는 등 관북리 유적이 백제왕궁의 일부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아직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부분이 추측의 영역에 남아있다. [[풍납토성]]만큼은 아니지만 관북리 유적 역시 발굴에 여러 애로사항이 꽃피는 곳이다. 태자가 머무는 태자궁(太子宮)이 존재했다. 사비궁 내부에 있던건지 외부에 있던 건지 확인 할 길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후계자가 머무는 동궁은 정궁 내부에 존재한다. 의자왕 대에 이르러 극히 사치스럽게 개축되었다고 한다. [[화지산 유적]]은 백제의 이궁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문헌기록과 주변환경을 봤을 때 백제의 이궁이였던 망해정(望海亭)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므로 조사가 끝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쌍북리 유적을 발굴하던 중 잠동궁(岑凍宮)이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 어떤 문헌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이름으로 사비궁의 별칭이거나 혹은 별궁 또는 [[화지산 유적]]의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시대 당시에 지은 건물은 아니지만 [[백제문화단지]]에 현재까지 얻은 정보를 토대로 사비궁을 복원해놓았다. 고증면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실물이 있다는 점에서 옛 백제의 궁궐을 가늠해 보기엔 나쁘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