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한일통 (문단 편집) == 역사 == [[통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명분으로 단순히 신라가 고구려, 백제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신라가 삼한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삼한일통 의식을 내세웠다. 그리고 신라 왕실은 어떻게든 백제 유민과 고구려 유민을 신라인으로 통합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오백 년도 더 넘게 이어진 신라 초기 육부의 직계 후신 진골들은 기득권을 좀처럼 양보하지 못했고, 때문에 [[후삼국시대|다시 셋으로 쪼개지고 말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속했던 이들은 다시 쪼개졌을망정 삼한일통 이데올로기까지 잊은 건 아니었고, 때문에 고려가 이 삼한일통 의식을 이어받아 재통일을 실천하였다. 고려 시대에도 삼한일통 의식과는 정반대인, 원심력인 분립적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무신정권기에 삼국의 부흥운동은 또 벌어졌다. 그러나 이는 후삼국시대처럼 파급력이 크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삼한일통 의식은 [[여몽전쟁]] 이후 여기서 더 나아가 '삼한(삼국)은 본디 한 나라였으므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아 [[고조선]] 계승 의식으로까지 발전하여 고대 삼국에 기반을 두는 분립적 의식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692년에 김유신이 삼한을 통일해 그 공업이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고 언급했으며, [[김유신]]의 열전에서는 지금 삼한이 한 집안이 되고 백성들이 두 마음을 갖지 않아 태평무사하다고 할 수 없지만 편안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외에 더 자세한 내용은 [[삼국통일전쟁]] 항목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