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산회의 (문단 편집) ==== 공산당원 추방 ==== >[[중국 국민당|본당]]과 [[쑨원|총리]]가 중국 공산당원의 입당을 허가한 것은, 그들이 개인의 자격으로 본당의 [[삼민주의|주의]]를 신앙하고, 국민혁명을 추진함에 있어 본당의 주의, 선전, 임무에 노력케 하기 위해서이며, 공산당이 당으로서 가입하여, 본당 내에서 별개의 공작을 하지 않을 것임을 성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공산당원으로서 본당에 가입한 자의 언론, 공작의 모든 것은 공산당 기관의 결의와 지휘에 의거하고 있고, 완전히 공산당의 활동이 되어 있다. 생각건대 공산당원이 본당에 가입한 의도는 본당을 이용하여 공산당 세력의 발전을 꾀하고, 소련의 앞잡이가 되는 데에 있다. 중소의 역사는 다르고, 사회정세도 역시 다르다. 국민혁명과 계급혁명은 병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공산당원을 본당 내에 오래도록 그대로 둔다면, 혁명단체의 당원은 내부문제로 인해 분쟁이 격렬해지고, 나아가서는 국민혁명의 진전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 >서산회의의 11월 23일자 선언 회의 첫날, 서산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14가지 의안을 토의했는데, 2번째 안이 바로 국민당에 가입한 공산당원의 당적 취소였다. 12월 2일 서산회의는 만장일치로 공산당원들을 추방하기로 결정, 9인의 공산당원을 추방했다. 이때 추방하기로 결의한 인물로 담평산, [[리다자오]], [[구추백]], [[마오쩌둥]], [[장궈타오]] 등도 있다.[* 물론 당시 마오쩌둥은 후보집행위원에 불과했고 주로 칼날은 중앙집해위원인 담평산, 리다지오 등을 겨냥했다.] 하지만 흔히 단순 반공파로 인식되는 서산회의파지만 서산회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결정이 선의에 기반한 것이며 결코 공산당을 청산하려는 의도는 없고 공산당과의 합작도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기는 등 의외로 공산당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서산회의파는 자신들의 공산당원 추방에 대해서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가입한 공산당원들이 국민당의 생존과 발전을 저해하여 어쩔 수 없이 현실적 이유로 이들을 추방하였다고 밝히면서 자신들은 여전히 공산당을 우당으로 간주하겠다고 하였다. >"제국주의 타도를 주장하는 공산당의 노력하고자 하는 방향은 삼민주의의 그것과 대체로 부합하는 것이다. 이점 때문에 본당은 공산당을 연합의 대상이자 우당으로 여기는 것이다." >---- >1925년 12월 14일자 민국일보[* 상해중앙 기관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