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후회의 (문단 편집) === 회의의 난항 === 2월 19일, 2차 대회가 열려 본격적인 의안검토가 시작되었다. 돤치루이가 6건의 의안을 제출했고 각 회의원들의 제의안, 수정안, 의견서도 12건 제출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2월 24일의 3차 대회에도 마찬가지였고 이후 3월 16일의 7차 대회까지 마구잡이로 의안이 제출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너무나도 많이 쏟아진 의안들 때문에 의안이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아 일거리만 쌓여갔다. 회기 종료일로 지정된 3월 16일까지 의안이 단 하나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자 여론이 이를 비난했고 이에 회원들은 선후회의를 20일 연장하기로 한 다음에 2주간의 휴회기를 두어 담화회 등의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여 의안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2주간의 휴회기 동안 의원들은 연일 담화회를 열어 재정, 군사부문의 부문별 토의를 진행했고 또한 전문위원회연합심사회에서 각 수정안을 심사하게 했다. 3월 31일 8차 대회가 열려 선후회의가 재개된 이후는 덕분에 빨리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난항을 겪었다. 연성자치론자들은 [[저보성]]을 중심으로 선후회의에서 연치를 건설방침으로 정하게끔 노력하겠다는 조건으로 선후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들은 통일의 전제로 임시정부를 합의제로 개조할 것을 건의하는 <중화민국임시정부제 초안>을 내놓아 33인의 집정으로 구성된 국무원을 행정수반으로 하는 개조안을 제안했지만 돤치루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과거의 연성자치론자 탕의도 돤치루이와 밀접하게 연대하여 선후회의가 이를 의결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합의제 개조 주장을 저지하여 저보성 등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연성자치론자들의 제의는 정식으로 토론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이에 분노한 저보성과 호남성 대표 등 연성자치론자들은 선후회의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또한 선후회의의 지속적인 평화 호소에도 불구하고 2월 22일 하남에서 군벌들간의 무력충돌이 시작되었고 여론과 선후회의 회원들은 격분했다. 1925년 2월 20일자 시보는 <회의는 회의고 실력은 실력이니 170여인의 토론이 대국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라는 사설을 통해 선후회의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후스도 집정정부가 군벌들의 분쟁을 저지할 방도나 성의가 없다고 여기고 선후회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참여를 중단했다. 선후회의는 중요한 주제인 군사문제에서도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강절전쟁]]에서 강소독군 [[치셰위안]]의 공격으로 축출되었던 전 절강독군 [[루융샹]]을 다시 장강 유역에 정착시키기 위해 돤치루이는 1924년 12월 3일 루융샹을 직예군무선후독판에 임명했지만 봉천군벌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에 돤치루이는 강소에서 치셰위안이 실각한 틈을 타 루융샹을 12월 11일 소환선무사에, 1925년 1월 16일 강소군무선후사의에 임명했다. 하지만 강소성에서도 루융샹의 남하가 전란을 야기할까 우려하여 반대기운이 높아지자 루융샹은 2월 27일 강소군무선후사의 직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함으로 당시 중국에서 벌어지던 독군 폐지 운동에 동참했다. 이에 여론이 그의 주장을 환영하며 돤치루이에게 루융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지만 돤치루이는 이를 묵살했다. 반면 장쭤린은 동삼성순열사직을 폐지하고 강소, 강서의 독리군무직을 폐지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호응했다. 물론 장쭤린의 폐독 역시 독판군무선후사의라는 이름만 다른 독군을 만들어 대체한 눈가리고 아웅한 격이었지만 그나마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돤치루이의 태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그나마 돤치루이가 2차 대회에 제출한 재병론 역시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서 더욱 그의 성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봉천군벌 등은 그 정도의 의안 역시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담화회에 불참했다. 결국 모든 군사문제는 선후회의 폐막 이후 조직될 군사선후위원회에서 다루는 것으로 합의되면서 군사문제는 선후회의에서 완전히 보류되었다. 또한 돤치루이는 임시집정정부의 존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임시참정원조례> 9조를 발표하여 정식정부 성립까지 임시참의원이 직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여론의 비난을 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