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종(요) (문단 편집) == 사후의 막장 황실사 == 사후 황실사가 좀 막장스럽다. 성종의 정실인 인덕황후의 이름은 소보살가(蕭菩薩哥)로, 성종의 어머니인 승천태후 소작의 조카였다. 기록에는 얼굴도 아름답고 성품도 훌륭해서 성종과의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을 둘 낳았으나 이 아들들은 모두 일찍 죽었다. 뒷날 성종은 소누근(蕭耨斤)[* 사후 흠애황후]이라는 후궁을 가까이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이 바로 훗날 [[흥종(요)|흥종]]이 되는 야율지골이었다. 이 아이는 정실인 소보살가가 직접 양육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친아들처럼 매우 아꼈다. 한편 친모이지만 후궁이었던 소누근 역시 황후 소보살가를 옆에서 모셨지만 속으로는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종이 병에 걸려 위중해지자 소누근이 황제의 병수발을 들었는데, 그녀는 대놓고 정실인 소보살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성종이 붕어하고 야율지골이 흥종으로 즉위하자 소누근은 스스로 황태후가 되었으며, 소보살가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서 유배시키고[* 이 와중에 [[소손녕]]의 아들인 소필적이 소보살가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그 역시 이 역모사건에 걸려 죽었다. 이때 소필적의 부인이 여진으로 도망가자고 했지만 소필적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을 보내 그녀를 죽여버렸다. 소보살가는 자신을 죽이러 온 사자에게,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 죽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도록 해 달라." 하는 말을 했고, 결국 목욕을 한 이후 죽임을 당했다. 이 무렵은 고려도 현종이 붕어하고, [[덕종(고려)|덕종]]이 즉위했을 무렵이었는데, 덕종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사]]》를 보면 [[거란족]] 출신의 고위 관료들이 대거 고려로 [[망명]]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정치 혼란 속에서 고려 뿐만 아니라 여진이나 북송 등의 주변국가로 도망친 거란인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소누근은 황태후로서 섭정을 맡아 권력을 행사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1034년]]에 동생들을 모아 그녀의 차남이자 흥종의 동생인 야율중원을 황제로 세울 음모를 꾸몄다. 그런데 야율중원은 이 음모를 형 흥종에게 알렸고, 흥종은 어머니의 태후 옥새를 빼앗은 다음 유폐시켰다. 그러다가 5년 후에 흥종은 모후를 유폐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마차를 몰아 어머니를 맞아들여 효도를 다했다고 한다. 결국 소누근은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잘 살다가 1055년에 흥종이 먼저 붕어하고, 흥종 사후 2년 뒤에 병사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소누근이 죽고 난 후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소보살가와 함께 성종의 능인 경릉에 묻혔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