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 (문단 편집) == [[소련/문화|문화]]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소련/문화)] 소련은 [[발레]]와 음악, 문학 등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전통을 유지하고 장려했다. 소련 영화의 경우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유수의 영화 감독들이 세계 영화사 발전에 한 획을 그었으며,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같은 걸출한 작곡가들을 배출하면서 클래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중문화에서도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를 비롯한 발라드 가수에서 한국에서도 소련 락음악의 거장으로 알려진 [[키노(밴드)|키노]]까지 다양한 예술성을 선보인 음악인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동시에 소련은 문화에 대한 [[검열]]과 감시가 심한 국가였다.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에는 국가가 판단하기에 거슬리는 표현은 중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혹독했지만, 이후 스탈린에 비판적인 [[니키타 흐루쇼프]]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오늘날 소련 수용소의 현실을 고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당시 소련에서 출판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문화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검열은 여전히 엄격했다. 예를 들어 당시 소련 입장에서 "이념적으로" 불순한 [[록]], [[펑크]] 음악가들은 검열에 신경쓰거나 해적판 음반으로 겨우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야 할 때가 많았다. 당시 소련의 검열이 다른 [[현실사회주의]] 국가보다는 여유롭다고 해도, 엄연히 창작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현실은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은유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풍자, 비판하거나, 더나아가 아예 서구권으로 망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영화 [[백야(미국 영화)|백야]]로 유명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이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문화계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그 대가로 소련 시절에 비해 대중 문화 수요의 질적 하락[* 한국만 해도 케이블 TV가 보급되기 이전 다큐멘터리 등등의 시청률이 높았다가 케이블 TV 보급 이후 채널 선택권이 폭증하면서 결과적으로 교양 관련 프로그램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하락하는 문제 등이 발생했었다.]이 발생하였다. 소련 시절에는 오페라나 문학 같은 취미를 권장하던 편이었으나,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국가적 지원이 사라지면서 대중문화 수준이 질적으로 하락했으며 특히 영화산업은 정부지원이 끊긴 이후 큰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회복할 조짐을 보였으나,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권위주의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러시아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다시 소련식 관제문화로 회귀한다는 반발과 우려가 나오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