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조귀 (문단 편집) == [[태평천국 운동]]에서의 역할 == 소조귀는 태평천국 초기의 최고 군사 지휘관 중 하나였고 1851년 1월 11일에 태평군 전방부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태평천국이 융안(영안)을 점령한 직후에 홍수전은 소조귀를 우필우정군사에 임명했다. 12월 4일 홍수전은 소조귀의 공을 치하하며 그를 서왕(西王)으로 임명하고 팔천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6일 후, 청의 융안을 향한 반격 중 소조귀는 부상을 입었다. 그 후로 갑자기 천형하범은 멈추어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가 빙의된 몸이 다쳤다고 예수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다만 양수청의 압박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태평군이 다오저우에 진을 치고 있던 1852년 여름 소조귀와 양수청이 지역민들의 동정을 얻어 새로 증원을 시행하자는 청원을 올렸다.[* 융안에서 탈출하며 태평천국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이 청원은 태평천국의 종교적-민족적-정치적 삼위일체 환경을 민중의 기독교화, 소수민족인 만주족에 의한 지배체제의 청산, 태평천국의 관점에서 부패한 정부의 파괴의 요구를 통해 제공했다. 청원은 지방 신사와 세력가들의 반발을 고착화했지만 20,000명의 지역민들을 증원하는 것을 도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