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지만 (문단 편집) == 여담 == *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랫동안 꾸준히 활약해온 대타자. 불행히도 [[이승엽]], [[심정수]], [[박재홍(야구)|박재홍]], 그리고 [[펠릭스 호세]], [[타이론 우즈]], [[제이 데이비스]] 등 용병타자들의 시대에 활약해 온 탓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다. 게다가 송지만보다 더 꾸준하고 더 화려했던 [[양준혁]]이 동시대에 존재했다. 타율이 약간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 점. 15시즌 동안 3할을 넘긴 게 단 2번 뿐이다. 어쩌면 숨겨진 레전드라 불러야 할 지도. * 한때는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중장거리 타자로 2년 연속 [[20-20]]을 기록하기도 했다.[* 98년 16홈런 25도루를 기록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던 시드니 올림픽 연습경기에서의 발목 부상 후유증으로 2001년부터 주루 능력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2012시즌 들어 후배들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주루훈련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 어깨도 크보에서는 강견으로 손꼽히는데, 이 역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크보의 대표 강견이었던 [[심정수]], [[심재학]], [[심성보]] 즉 '3심'에 비해 저평가 되는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를 지난 이후에도 그의 강한 어깨는 상대팀의 주자들이 1루나 2루에 있을 때 다음 베이스로 태그업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묶어뒀다. [[199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공필성]]을 잡은 홈 송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한 [[2013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혼이 실린 송구'''는 아직도 송지만의 어깨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현대 시절에는 초구 타격을 좋아하고 득점권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현대 팬들 사이에서 '스텔스기'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통산 득점권 타율은 0.275로 평균인 0.282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초구 통산 타율이 무려 '''0.380'''에 초구 홈런만 '''70개'''이다. * 2000년에 특이한 타격자세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기마자세'''라 불리는 폼으로 MLB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레전드 '''[[제프 배그웰]]'''과 유사한 타격폼. 이 타격폼으로 송지만은 처음으로 30홈런을 넘어선다. (32홈런) 덕분에 당시 야구소년들이 [[박정태]]의 폼과 더불어 가끔씩 송지만의 폼을 흉내내곤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 자세만을 고집하지 않고, 꾸준히 타격폼을 교정해가며 선수생활 내내 변화를 시도하는 자세를 보여 줬다. * [[이만수]], [[한상훈]], [[모창민]] 등과 더불어 KBO 리그에서 유독 돋보일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 선수로 알려져 있다. '''"송집사"'''라는 [[별명]]이 그 증거.[* 선수단에서는 아예 [[목사]]라는 별명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한화에 있을 때 경기 전 식사를 1군 코치였던 [[유승안]] 전 감독과 같이 했는데 간절히 식사 전 기도를 바치려던 유 전 감독이 송지만에게 "어이, 송 목사! 내 기도도 부탁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유승안 전 감독도 개신교 신자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답게 평소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기로 유명하다. 다만 팀 후배였던 [[조용훈]]에 의하면 현대가 해체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되면서 구단 상황이 어수선했을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평소 입에도 안 대던 술을 마셨다고 한다.] 팔에 익투스 [[문신]], 몸에 예수 문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10년 7월 20일, [[SK 와이번스]] 구원투수 [[정대현(1978)|정대현]]의 시즌 평균자책점 제로를 깨뜨리는 적시타를 치면서 별명 '교회오빠'[* [[개독교]] 관련 레퍼토리 중 하나인 '[[목사]]/장로 성추문 사건'에 빗댄 것. 송지만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별명이겠지만 2010년경까지만 해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고, 그 이후로도 여전히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팬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인 시절 선배들에게 [[도날드 덕]] 혹은 [[오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구강구조가 약간 튀어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뛰던 1999년 4월 21일 청주구장에서 쌍방울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도 홈을 밟지 않아 홈런을 날려버린 일도 있었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홈런 [[누의 공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800502|KBS 뉴스 장면]]이외 사례로는 2003년 LG의 [[이지 알칸트라]]가 한 차례 기록한 게 전부이다. 게다가 같은 해 프로야구 10,000호 홈런을 롯데의 [[펠릭스 호세]] 선수가 기록하는데, 송지만의 누의 공과가 없었다면 10,000호 홈런의 주인은 [[양준혁]]이 차지할 수 있었기에 나중에 송지만이 양준혁 선배에게 제일 미안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여담으로 다들 홈런이구나...하면서 딴 데 신경쓰는 사이에 유일하게 송지만이 홈플레이트를 안 밟은 걸 캐치해낸 사람이 바로 상대팀 前 쌍방울 감독인 [[김성근]]이었다.[* 그리고 훗날 [[김성근]]은 본인이 누의 공과를 잡아낸 그 팀의 감독이 된다] * [[송진우(야구)|송진우]]의 2,000 탈삼진을 허용했다. 2006년 [[안영명]]-[[김동수]] 간 빈볼시비에서 송진우에게 날라차기를 얻어맞기도 했다. 여러모로 송진우의 피해자. *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멤버 중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두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LG의 [[이상열(야구)|이상열]].[* 이상열이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멤버냐고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한국시리즈에 출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9년에 한화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박정진]]이 가장 오래 뛰기는 했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었기 때문에 논외.] 인상깊은 장면은 상기됐듯 5차전 때의 홈송구. 주자였던 [[공필성]]이 3루로 돌아가려다 되려 견제사당했었다. * [[파일:attachment/송지만/2013110701000725900041571_59_20131107113402.jpg]] 몸매를 보면 알겠지만, 자타 공인 크보의 헬스덕후. 이걸 불암콩콩이 써먹기도 했다. 은퇴 직전까지 당당하게 주전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꾸준한 체력 관리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다. 실제로 체력 검사 결과 20대 체력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래서 붙은 별명이 '''한국형 [[에릭 테임즈|테임즈]]'''. 은퇴를 하고 나서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29&aid=0000021305|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KBS N 스포츠]]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본인의 차를 몰고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해 왔다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자기관리가 꽤 철저한 선수였다. * 2004년 쯤, 브로커로부터 약물 권유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인터뷰를 했었다. 애초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도핑|약물]] 문제는 쉬쉬하고 덮는 분위기라 별 반향없이 묻혔지만 분명히 있었던 사실. 많은 이들이 약물을 써서 손쉽게 스타가 되던 시절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일본/한국 모두 극악의 타고투저가 수 년간 계속되었다. 이 시절 수많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타자들이 약빨로 기록을 세웠다는 게 [[미첼 리포트]]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과연 이게 메이저리그만의 문제였을까.] 소신있게 거부의사를 밝히고 폭로까지 했던 스포츠맨십은 존경받을 만하다. 과연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이 송지만 한 명이었을까.'''[* 당장 팀 선배였던 [[이숭용]]이 금지약물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고농축 카페인 복용 사실을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것만 봐도 프로야구계는 생각보다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 * [[이도형]]과 나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456&article_id=0000000944|인터뷰]]가 올라왔다. 상당히 길지만 내용이 좋으니 송지만 선수의 팬이라면 읽어보자. * 인성이 훌륭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https://play-tv.kakao.com/embed/player/cliplink/58103743|동영상]]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에 같이 뽑혔던 [[박찬호]]와 같은 92학번 동기이나, 친분이 없어[* 또한 박찬호는 한양대를 2년만 다니고 바로 도미한 탓에 생각보다 선수들과 접점이 없다. 게다가 송지만과 국대에서 처음으로 함께했던 상황이었니 어색할 수 밖에.] 서로 존칭을 쓰다 주장 [[이종범]]에게 지적을 받았다.[[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319485|기사]] 이종범이 무릎팍도사에 출연 당시에도 이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선수들이 박찬호를 특별하게 취급하여 선수단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박찬호는 한참 후배인 [[봉중근]]에게 존칭을 쓴 적도 있다. * 한화 시절에는 후배 [[김태균]]과의 사이클이 매우 안 맞았다. 2001년 송지만이 전년도 부상 여파로 부진[* 부진이라고 말하기는 좀 가혹한 잣대지만 2000년보다 못한 성적은 맞다. 물론 골절된 다리에 수술용 철심을 박은 다리로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그래도 다리부상이 있어도 원래의 실력이 녹이 슬지 않았음을 보였다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다리에 철심이 박힌 상태로 타격 시 필수적인 하체를 사용한 무게중심 고정은 결코 쉽지 않다.]할 때 김태균이 혜성같이 나타나 신인왕을 타며 주포로 군림했다. 2002년에는 김태균이 2년차 징크스로 거하게 폭망할 때 송지만은 홈런 레이스에 발을 걸칠 정도로 부활에 성공, 03년에는 김태균이 31홈런 치며 활약할 동안 송지만은 또 부상으로 부진. 결국 이 때문에 송지만이 현대로 트레이드되며 이런 불편한 사이클은 끝나게 된다. *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에서 [[정준하]]가 [[이숭용]]과 역할을 바꿔 넥센 연습경기에 참여했는데, 송지만은 잔뜩 긴장한 정준하에게 다가가 살갑게 농담을 던지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팀 내에서 왕고는 이숭용이었고 그 다음 서열이 송지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