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숙군 (문단 편집) === [[대한민국]]에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46-1950년 한국군의 숙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해방정국에서 [[한국군]] 내 친[[소련]], 친[[공산주의|공]] 성향 [[군인]]들을 솎아낸 일, 그리고 [[민주화]] 이후인 [[문민정부]] 시절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들을 대거 경질시킨 일 등이 대표적인 숙군 사례로 꼽힌다. 아직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지 않았던 [[1940년대]] 중후반기에는 남북간 이념대립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금방 [[남북통일|통일]]이 이루어지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군인들도 국가보다는 이념에 따라 충성의 대상을 찾곤 했다.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대한민국]] [[조선경비대]][* [[미군정]]의 주도 하에 창설된 공식 군사조직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이다.]가 엄연히 [[북한]]의 [[조선인민군|보안대]]와 대치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익 군인들은 심정적으로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으며 실제로도 여러 [[탈영]], [[월북]], [[항명]] 사태가 일어나곤 했다. 때문에 [[대한민국 국군]]의 입장에서는 유사시 [[북한|적]]과 내통하여 문제를 일으킬 만한 [[장교]]나 [[사병]]을 찾아내 처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불순분자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숙군으로 인해 당시 장교진의 5% 정도가 군에서 축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사관과 병사,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회의감을 느껴 전역한 이들까지 감안하면 10%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 숙군이 [[남로당]] 계열만 정확하게 골라내서 날린 게 아니라 다소 불분명하게 이루어졌고[* 이 탓에 창군기 시절 장교들의 회고록을 보면 [[공산주의]]랑 상관 없는 부하를 잡아가는 숙군의 주먹구구식 집행에 대해 비판하는 늬앙스를 풍기거나 [[김창룡(군인)|김창룡]]에 대해서 치를 떠는 서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중도]]나 우익 계열임에도 단지 [[이승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같이 날아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며 그 빈자리를 [[서북청년단]] 등 [[극우]] 집단으로 채우면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숙군은 주로 [[대한민국 육군|육군]]이 대상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해군|해군]]은 육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이지 당시 해군에겐 귀중한 알짜배기인 기술장교들이 적지 않게 모가지가 날아갔다(...).] 한편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5.17 내란|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 세력을 조사·처벌하는 과정에서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존재가 드러났다. 오직 국가의 명령에만 충성해야 하는 군 내부에 공식적인 지휘 체계 이외의 사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민통제]]에 크나큰 위협이었으며 실제로 [[5.16 군사정변]]과 [[12.12 군사반란]] 등 연이은 [[쿠데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받은 전적이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를 가능한 빠르게 숙정(肅正)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까지는 여전히 대한민국 군부의 입김이 강했기 때문에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문민정부]]는 비선을 동원하여 기습적으로 군 내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여 하나회 요인들을 요직에서 예편, 제거하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김관진]]을 중심으로 한 독사파 등이 잠깐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문민통제]]는 그럭저럭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다만 제2의 하나회라고 할 수 있는 [[알자회]]가 드러난 일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