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승자총통 (문단 편집) === 전투영상: 조선초기의 대규모 교전 묘사 === [youtube(uCyAP4AOhOc)] 승자총통으로 대표되는 고려 말과 조선 전기의 개인용 총통은 화승총이 들어오기 이전까지는 의외로 세련되고 강력한 무기체계였다. 때문에, [[핸드 캐논]]의 전성시대였던 조선 초기에는 지금의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위의 영상에서 1:20~1:40까지는 '''바주카포 형태처럼''' 사용하는 대형 화살을 쏘아서, 적의 방패를 파괴하는데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1:45 부터는 '''연발식 총통 [[화차]]'''가 등장하여 장거리 지원 사격을 하면서, 적이 전력을 유지할 수 없도록 다연장 화력 투사를 하는데도 사용되는 묘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위의 만령 전투는 현실에서 조선군과 조선군 양쪽이 개인총통을 운용했던 대규모 화약 전투였다. 영상을 정독하면 카탈로그와 전술적인 운용을 알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시애의 반란군과 세조의 진압군이 무려 수백개의 [[핸드 캐논]][* 영상에서 언급한 기록상으로만 양쪽이 최소한 1,000개는 될법한 개인화기를 동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덤으로 반란군 진압이 끝나고 북방에 재보급해준 구조물 파괴용 대형화살(차중전=세전=피령전)들은 대략 5,000발인데, 시대상을 감안했을때는 몇천명 정도의 전투 규모에 비해서 양측의 조선군들이 사용했던 개인화기의 비율 및 전술적인 사용법이 굉장히 체계적이다.]을 동원하여, [[바주카]] 형태, [[화차]] 형태 등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술적으로 응용하였다. 바주카 형태의 사용법으로는 적의 방패를 깨부수고, 화차 형태의 사용법으로는 뚫는 것이 막막한 방어진에 대규모 원거리 포격을 하여 적이 진영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등등, 화력덕후 기질을 보여주는데 잘 사용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