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크교 (문단 편집) ==== 고빈드 싱의 시크교 개혁 ==== 지도자를 잃었지만 테그 바하두르의 아들 고빈드 싱이 제10대 지도자로 올라서 저항운동을 벌여 결국엔 펀자브에서 무굴 제국의 패권을 영원히 깨뜨려버렸다. 고빈드 싱은 평화주의에 가까웠던 시크교에 전투적인 속성을 더하기 위해 일종의 무장집단인 칼서(Khalsa) 중심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시크교도들은 한 그릇에 담긴 암리트(성수)를 다함께 나눠마시는 의식을 치르고 칼서에 입단한다. 이 때에 확립된 것이 시크교도의 5대 상징물인데, 장발, 긴머리를 감싸 활동성을 늘리는 터번, 스스로를 지킬 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는 반바지(팬티대용), 여차하면 타격점 및 방어용으로 사용 가능한 팔찌 등으로 과연 상징물부터 전투민족다운 기상이 느껴진다. 또한 4가지 수행 규칙을 지키도록 하였다. 첫째, 몸에 있는 어떤 털자락도 자르지 말 것. 둘째, 담배를 피거나, 씹거나, 알코올이 든 음료를 마시지 말 것. 셋째, 피가 흘려서 죽인 동물을 먹지 말고, 단칼에 내리친 동물의 고기만 먹을 것. 넷째, 무슬림 여성을 겁탈하지 말 것. 넷째 규칙은 당시 무슬림과의 전투가 빈번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보복 행위를 금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크 공동체의 모든 신자가 고빈드 싱의 개혁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나나크의 가르침 및 시크교의 교리를 따르되 고빈드 싱의 개혁에 따르지 않은 이들을 가리켜 '사하지다리'(Sahajdhari)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빈드 싱의 5대 상징물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한편 근대 이후 서구문명과의 충돌에 대한 반응으로 머리를 깎고 서양 문화를 적극 받아들인 시크교도들도 있는데, 머리카락을 깎은 시크들을 모나(Mona) 시크라고 하고, 반대로 머리를 기르는 시크들은 케사다리(kesadhari)라고도 부르고 있다. 고빈드 싱은 다음과 같은 교리상 원칙도 내세웠다. * 앞으로는 사람을 [[구루]](지도자)로 받들지 않는다. 시크교 경전 그란트가 지도자 역할을 한다.[* 이는 구루의 지도권을 둘러싸고 시크교의 내분/분리가 일어나는 것을 꺼린 까닭이었다. 실제로 그때까지 시크교는 지도권을 둘러싼 갈등을 여러 차례 겪었다. 운 좋게 어찌어찌 다 무마되긴 했지만...] * 모든 시크교도는 동시에 모두 지도자이다. * 모두가 평등하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없고, 남녀노소의 불평등 또한 없다. 모든 이를 품어야 한다. * 아름다운 우주의 본모습, 그것이 바로 하나 뿐인 신이다. 우리는 그 하나됨을 명상하고 서로를 감싸안아야 한다. * 불필요한 의식도 필요 없고, 억압도 필요 없다. 격식을 따지지 말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