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크교 (문단 편집) === [[시크 왕국]] 건설 === 시크교와 힌두교를 탄압하고 박해함으로서 각 지방에서 일어난 강력한 반발로 인해 점차 [[무굴 제국]]은 쇠퇴하게 되고 19세기 초 '[[펀자브]]의 사자' 란지트 싱(Ranjit Singh)을 중심으로 뭉쳐 [[펀자브]] 지방에 [[시크 왕국]]을 건설하고 아프간 일부를 점령하기까지 하여 세력을 떨치며 [[인도]]를 정복한 [[영국]]과도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전쟁을 [[영국-시크 전쟁]]이라고 한다. 시크교도들은 분전하였으나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이 살던 [[펀자브]] 지방은 다시 타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때 시크교도들은 뛰어난 용맹함을 보였고, 이들과 싸웠던 영국군조차 시크교도들의 용맹함에 감탄할 정도였다. 특히 시크교도들로 구성된 [[기병]] 부대인 고르쿠라 사르다르는 영국군으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기병대'''"라면서 찬탄을 받았다. 몇가지 신통하지 않은 문제가 골칫거리가 되긴 했어도 일단 영국은 강제적으로 [[개종]]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무굴 제국 때와는 달리 그럭저럭 평화롭게 유지됐으며 영국은 종종 시크교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 그러나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고 종교에 의한 국가 분열이 이뤄지면서 서서히 시크교도들도 자기들의 나라를 가지려는 이념을 가지게 된다. 외세의 탄압 때문에 존폐 문제를 겪었기 때문인지 교리나 문화가 힌두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나 무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남자 신도들은 언제나 키르판(kirpan)이라는 단도칼을 휴대하고 다닌다. 인도군이나 경찰에서도 시크교도 출신의 군인이나 경찰이 많고 시크교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 수상의 경호원도 전원 시크교도들이다. 해외에 진출한 시크교도들도 직업이 군인이나 경찰인 경우가 많다. 또 실질과 상업을 중시하기도 해서 인도에서도 중요한 기업나 공장들이 시크교도 소유인 경우도 많고 시크교도들이 인도경제의 중추 역할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