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태용 (문단 편집) ====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 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윤상철]][* [[윤상철]]도 역시 한 때 K리그 통산 최다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K리그 에서의 활약은 레전드급이나, 이에 비해 대표팀과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다.]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축구)|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K리그의 레전드'''. 참고로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파일:k%B8%AE%B1%B9%C0%FC%B5庣%BD%BAƮ11_2.jpg|width=400]]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성남 FC|일화 천마]][* 이 때는 서울 연고 팀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때문에 [[천안시]]로 옮긴 때는 1996년이다.]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맹장 [[박종환]]이었고,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축구인)|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파일:external/www.kbmaeil.com/general_news_g_1118399970.jpg]]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성남 FC|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성남 FC|일화 천마]]는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성남 FC|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20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 천안 일화에서 해임된 뒤, J리그 팀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을 맡았다. 당시 [[황선홍]]이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며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 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_league/news/read.nhn?oid=022&aid=0002277349|#]]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사샤 드라쿨리치|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축구)|김상식]], [[김영철(축구)|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데니스(축구)|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JMT1&articleno=1922146&categoryId=278403®dt=20080124184411|#]]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1101301000962200081791.jpg]] 2003년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몰리나]], [[염기훈]] 단 다섯 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성남종합운동장|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축구)|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 현 [[프렌테 트리콜로]]]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건 좀 의문이다.[[https://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92596|#]]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40720_08_03.jpg]] 2017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8명 뿐이다. [[데얀 다먀노비치|데얀]](141골) [[이동국]](180골),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축구)|김현석]](110골), [[사샤 드라쿨리치|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은 [[미셸 플라티니|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슛포러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0골은 [[조기축구회]]에서 넣었다고 한다.] 또한, '''K리그1 시즌 베스트11 최다 수상자(총 9회 수상)'''이며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축구)|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 2016년에 은퇴할 때까지 [[김병지]]는 선수 생활 내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할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다.]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 김기동 선수는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통산 501경기 출전했다.] 한편, 2023년 [[한국프로축구연맹|연맹]]이 기록 세분화와 기록 체계 개편을 하는 도중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의 누락된 기록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신태용의 골을 추가할 가능성이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76&aid=0004010635|스포츠조선 발 보도]]로 제기되고 있다. 만일 기록이 추가될 경우 신태용의 통산 기록은 405경기 102골-69도움이 될 전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