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수산 (문단 편집) === 2차대전 참전 및 정보원 활동 === 안수산이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한 해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던 후였다. 처음 지원했을 때는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탈락했었으나, 재지원해서 입대할 수 있었다. 입대를 지원한 동기는 '''‘[[안창호|일본에 맞섰던 아버지]]의 [[한국독립운동|싸움]]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이 내용은 2020년에 안수산의 일생을 조명한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광복절 특집에서 게스트였던 [[최희서]]에 의해서도 소개된다. 1942년 메사추세츠 주 노섬프턴에 있는 스미스 컬리지 근처에 있는 미 해군 예비군 장교교육 학교(United States Naval Reserve Midshipmen's School)에 입교, 과정 수료 후 미 해군 소위로 임관한 안수산은 미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 되었다. 1943년 미 해군 비행 시뮬레이터의 모의비행 교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여 이내 미 해군 최초의 여성 항공병기 장교로 항공기총 사수들에게 항공기 후방석 시뮬레이터에서 적의 비행기를 격추하는 각도분석 방법을 교육하는 훈련교관으로 근무했다. 안수산의 이야기를 다룬 존 차의 《버드나무 그늘(Willow Tree Shadow)》이라는 전기에 의하면, 아직 미국 내 반아시아 정서가 높고, 군 내에서 여성이 소수자이던 시절이라서 한 백인 남성 병사가 동양인 여성 장교인 안수산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항의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안수산이 대위가 된 뒤에는 미 해군 정보국과 의회 도서관에서 일했다. 안수산은 공식적으로는 1946년에 해군을 제대했고, 이후 1959년까지 워싱턴 DC에 있는 [[NSA|국가 안보국(NSA)]]에서 암호 해석을 주로 하는 비밀 정보 분석요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처음 6개월간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암호 해독 활동에서 배제되었다. 냉전 기간 동안, 안수산은 대 소련 섹터의 300명 이상의 싱크탱크에 대한 책임자로써 국방을 위한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