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규 (문단 편집) === 초기 === 대(對)거란 전쟁 이전 초년기의 양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그의 <열전>에 [[목종(고려)|목종]] 때 여러 [[관직]]을 거친 끝에 형부 낭중이 되었다는 기록만이 파편적으로 남아있는데 이를 근거로 추측하건대 [[성종(고려)|성종]] 말년이나 목종 재위기에 관직에 나섰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당하고, [[현종(고려)|현종]]이 즉위하자 그걸 명분삼아 [[요나라]]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고려에 쳐들어왔다. 이 무렵 양규는 도순검사가 되어 흥화진[* 오늘날의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흥화진사 [[정성]], 흥화진부사 [[이수화]], 판관 [[장호]] 등과 함께 흥화진을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양규의 전임 도순검사가 바로 '[[강조(고려)|강조]]'였다. 양규는 강조의 후임으로 흥화진에 부임한 것인데 아무래도 [[정변]] 직후의 군 인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강조의 추천이나 승인없이는 이 요충지에 강조의 후임으로 부임하기는 어려웠을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양규는 어떤 형태로든 강조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