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면전쟁 (문단 편집) === [[일본 제국]] ===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전선을 크게 나누면 [[중일전쟁]]으로 인한 중국 전선과 [[진주만 공습]] 이후의 태평양 전선으로 나뉘었다. 태평양 전선도 세부적으로 보면 미드웨이-마리아나 제도-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중부 태평양의 해상 루트, 솔로몬 제도-뉴기니-인도네시아-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서남 태평양의 루트, 버마-인도차이나 전선 등을 구축해서 말 그대로 사방팔방에 전선을 확대한 꼴이었다. 중국 본토 전선을 포함하면 4면 전선인 셈. 그나마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으로 인해 소련-만주 전선만은 직접적인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1945년 8월 소련의 [[만주 작전]]으로 인해 이곳 또한 공격이 가해졌다. 1945년 8월 기준으로 [[오키나와]]에선 [[미군]]이 [[몰락 작전|주로 본토를 노리고]], [[중국]]에선 [[중화민국군]]이 반격하여 [[광시]]를 탈환하고, 동남아에서는 [[영국]]군과 인도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캐나다군이 접근하고 있었고, [[만주]]에선 [[소련군]]이 [[함흥]]까지 [[만주 전략 공세 작전|내려온]], 양면전쟁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사면초가|4면전쟁]]을 치뤘다. 거기다 일본은 주변에 [[이탈리아 왕국|동]][[크로아티아 독립국|맹]][[헝가리 왕국|국]][[루마니아 왕국|들]][[불가리아 왕국|이]] [[핀란드|있었던]] 독일과 달리 [[만주국]]같은 괴뢰국들을 제외하면 온전한 동맹국이 [[태국|1개밖에]][* 사실 이마저도 야권 등 저항 세력을 묵인해 주는것 같이 적극적인 협력은 아니었고 이것이 참작되어 태국은 전쟁책임을 크게 지지 않았다.] 없었으므로 사실상 혼자서 모두 상대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일제의 동맹국이라 할법한 추축국들은 죄다 최소 수천 km 떨어진 유럽에 있었으니 사실상 이들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기다 이마저도 이탈리아는 1943년에 항복했으며, 독일도 1945년 5월에 항복했으니 유럽에 있는 일본의 동맹이라 할 수 있는 추축국들은 전부 몰락한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