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춘추전국시대) (문단 편집) === [[전국시대]] === 그 후에도 별 일 없이 지내다가 [[전국시대]] 중반 [[연후문공|연 문후]]가 여기저기서 박대당하던 유명한 변설가 [[소진(전국시대)|소진]](蘇秦)을 등용해 재상에 앉혔다. 소진은 연나라 재상 신분으로 진나라를 제외한 다른 6국을 돌며 진나라에 대항한 동맹을 설파했고, 이를 합종책(合縱策)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연나라는 소진의 제2의 고향인셈. 소진의 마지막 활약(?)도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벼슬을 하며 제나라의 국부를 탕진시키는것이었다.~~[[도림]] 대사~~] 이후 [[연역왕|역왕]](易王)대 다른나라와 같이 왕을 칭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연왕 쾌 때에는 대혼란이 일어나 나라가 망할 뻔했다. 연왕 쾌가 신하인 [[자지(전국시대)|자지]](子之)에게 선양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지의 패거리였던 대부 [[녹모수]](鹿毛壽)가 늙은 연왕 쾌에게 신하에게 선양하는 것은 아름다운 덕을 보이는 것이라면서 자신에게 선양한다고 하면 자신은 사양하여 받지 않을 테니 두 명 모두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그럴 듯하게 여긴 연왕 쾌가 자지에게 선양하자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그대로 나라를 냉큼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어쨌든 선양이 이루어진 후에 태자 평(平)과 장군 시피(市被)가 반란을 일으켜서 몇 달간 싸우며 나라가 막장으로 흘러갔고 결국 시피는 패하고 죽었다. 이 와중에 강대국인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濟) [[제민왕|민왕]](閔王)의 군대가 쳐들어오면서 자지는 살해당했고 연왕 쾌는 [[자살]]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한(전국시대)|한나라]](韓)로 도망가 있던 공자 직(職)[* 태자 평의 이복 동생으로 연왕 쾌의 [[서자]]이다. 《사기》 <연소공세가>에는 태자 평으로 나오는데 《사기》 <조세가>에 '공자 직이 연왕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죽서기년》에 '자지가 공자 평을 죽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결정적으로 옛 연나라 유물에 연왕의 이름을 직으로 새겨놓은 유물이 발굴되었다.]이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이 수습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연나라의 [[명군]] 소양왕(昭襄王)이다. 연나라는 소양왕 때에 단숨에 전성기로 뛰어오르게 되었는데 소양왕은 국가를 부강하게 해줄 인재를 찾기 위해 대부 [[곽외]](郭隗)에게 방법을 물었다. >곽외: "옛날에 어떤 왕이 천리마가 갖고 싶어서 신하에게 천금을 주며 천리마를 구해오라 하였습니다. 허나 그 신하는 뜬금없이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금을 주고 사왔고, 화가 난 왕이 이유를 묻자 그 신하가 '천리마 뼈도 천금을 주고 살 정도면 진짜 천리마를 크게 쳐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신하의 말대로 1년도 되지 않아 진짜 천리마가 세 마리나 들어왔다 합니다." >소양왕: "갑자기 천리마는 왜 이야기 하는 것이오?" >곽외: "마찬가지로 별볼일 없는 인물을 후하게 대한다면 천리마 같은 인재가 모여들 거 아니겠습니까?" >소양왕: (아직도 감을 못 잡고) "그럼 그 말뼈다귀 같은 인간은 어디 있는 것이오?" >곽외: "[[어필|바로 신이옵니다]]." 소양왕이 곽외를 중용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싶었던 인재들이 연으로 마구마구 몰려들었고,[*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매사마골, 선시어외.] 특히 [[악의(전국시대)|악의]](樂毅)를 기용해 [[제-연 전쟁]]에서 제나라의 성 두 개[* 남아 있는 성이 즉묵과 거 땅밖에 없었다. 즉묵성은 나중에 제나라의 전단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고, 거성은 제민왕이 피난 중이던 곳이다.]를 남겨 놓고 모두 함락시켜 약 5년 동안 제나라를 거의 멸망시켰다. 그러나 소왕의 어리석은 아들 혜왕이 제나라 전단의 계책에 걸려 눈 앞에서 멸망시킬 기회를 놓쳤다. [[진개]](秦開)[* [[형가]]와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진무양(秦舞陽)은 그의 손자다.]에게 명하여 [[고조선]]을 침범해 이천여 리의 영토를 획득했으며 동호 또한 굴복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소양왕의 아들인 [[연혜왕|혜왕]](惠王)이 제나라 [[전단(전국시대)|전단]]의 이간계로 악의를 내침으로 인해 국력이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때 성안군(成安君) 공손조(公孫操)가 [[쿠데타]]를 일으켜 혜왕을 살해했고, 연나라 왕족인 [[연무성왕|무성왕]](武成王)을 옹립하였다. 그 외에도 혜왕은 괜히 옆나라 [[조(전국시대)|조나라]](趙)와 티격태격하면서 국력을 많이 소모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벌어진 싸움에서 60만 대군을 소모해버렸고 수년 후 그 원수를 갚겠다고 극신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복수전을 펼쳤지만 [[방난]]에게 전멸당했다. 이게 전성기의 조나라라면 모를까 [[장평대전]]으로 40만의 장정을 잃고 골골거리던 시절의 조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후 군사적 방위력이 전무해지다시피 한 [[전국시대]] 말기에는 [[연왕 희]](喜)의 태자 단(丹)이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형가]](荊軻)를 보냈지만 결국 암살에 실패했고, 진나라에 태자 단의 머리를 보내줬지만 진나라의 침략으로 서기전 222년에 연왕 희를 마지막으로 나라의 문을 닫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