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리엔탈리즘 (문단 편집) ==== 현대 일본에서 ==== 몇 년 후, 내적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적 팽창은 [[태평양 전쟁]]의 종전과 함께 끝났다. 압도적인 미군의 폭격과 원자폭탄으로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는 과정 속에서, 과거 쿠로후네 사건 당시에 그러했듯 서구에 대한 열등 의식이 다시 살아났다.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내적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하드웨어적 기반인 일본 제국 체제는 [[GHQ]]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일본이 당연히 이끌어야 하는 영역이었던 [[식민지]]들은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제국의 중심이자 한때 신이었던 [[천황]]은 이제 어떤 정치적 권한도 없는 단순한 상징이자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이유로 태평양 전쟁의 전후 처리가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국제 질서에 복귀했고, 일본의 오리엔탈리즘과 우월 의식도 [[일본 제국|전체주의적인 식민제국]]의 모습을 탈피하여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경제적인 형태]]로 복귀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빠지고 중국과 한국이 성장하는 근래까지 이어졌다.[* 위의 책, 94p] 물론 일본인들의 내적 오리엔탈리즘은 두 국가의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위상이 일본과 동등 또는 그 이상이 된 오늘날이 되어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들의 무의식 속의 '열등한' [[한국]] 및 [[중국]]의 이미지가 실제 그들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중국/경제|경제]] 및 [[대한민국/문화|문화 강대국]]으로서의 한국과 중국의 모습으로 인해 점차 깨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 일본인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20년 가까이 노출되고, 중국에게 경제적으로 역전된 것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래로 정립된 일본 민족주의 관념과 일본인으로써의 정체성 자체가 내적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성장했기에, 일본과 여타 [[동아시아]]를 이항 대립 구도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일본 내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아시아보다는 유럽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유럽]]과 [[미국]]에 대해 열등 의식을 내보이면서도 그들과 자신들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 때문에 일본의 내적 오리엔탈리즘은 현재까지도 일본인들이 가진 민족의식과 외부 인식의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 시대]] 이래로 일본의 내적 오리엔탈리즘 안에 자리잡은 양가적 인식, 즉 '동양과 달리 서양 문명에 가까운 일본'을 내세우면서도 '서양과는 다른 일본'[* 이 '서양과 다르다'는 관념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속성을 띈다. 근본적으로는 일본 역시 동양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만큼 '열등감'의 모습을 보이며, 개항과 제국 시절 전반, 그리고 패전 직후에는 서양에 대한 '두려움'의 속성 역시 강하게 띄었다. 그러나 [[러일전쟁]] 이후와 같은 시기에는 반대로 서양에 대한 '우월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이라는 자기모순적인 관념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감 역시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국제적 위상은 제국 시절과 냉전 후반기 두 차례에 걸쳐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로 불타올랐으나, 결국에는 1853년의 강제 개항과 1945년의 패전, 1990년대의 경제적 몰락, 그리고 구 식민지들의 약진 속에 꺾이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그토록 유별나게 한국과 중국의 부정적 측면에 집착하고 구미권의 시선과 인정을 [[일본 대단해|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은, 여전히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그들의 존재론적 불안을 드러낸다. 여담으로, 내적 오리엔탈리즘 담론이 가장 활발했던 일본 제국 시절 생산된 동양사 정보들은 비단 현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터넷에서 소위 '[[일뽕]]'이라고도 불리는 극단적인 일본 추종자들이 [[앵무새]]처럼 주워섬기는, 구 제국 시절 일본인들이 저술한 조선 [[여행기]]들과 [[역사서]]들이 그 예시다. 이 서적들은 라트겐이 비판했던 후쿠다 도쿠조의 저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세기도 더 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는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