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와세다대학 (문단 편집) == 소개 == [[1882년]] 창립된 도쿄전문학교를 기원으로, 1904년 [[전문학교령]]에 의거한 [[구제전문학교]]를 거쳐 [[1920년]] 2월 5일 [[https://dl.ndl.go.jp/info:ndljp/pid/2954364/2|문부성 고시 제36호]][* 재단법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대학령]]에 의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에 의거 [[게이오기주쿠대학]](문부성 고시 제35호)[* [[다이쇼]] 9년 문부성 고시 제35호 "재단법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에 [[대학령]]에 의한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과 함께 [[일본제국]]에서 최초의[* 문부성 고시 제35호로 인가된 [[게이오기주쿠대학]]이 고시 번호가 더 빠르긴 하나, 같은 날 동시에 승격되었으로 누가 더 빠른지 논쟁은 무의미하고 공동으로 최초라고 간주하면 된다.] 사립 [[구제대학]]으로 인가받았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일본 최고의 사립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며 21세기에 이르러 현재는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이를 양분(兩分)하고 있다. > [[한국]]에서도 와세다(早稲田) 대학은 [[일본]]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동양]]의 명문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東京) 대학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대학 이름이 와세다일 정도로 한국에서 더 평가되고 있다. 와세다 대학은 식민지 시대 조선의 [[독립]] 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헌하였던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유학]]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였던 일본을 통해 근대화를 모색하려는 수단이였다. 민족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유학생]]들은 식민지 지배에 동조하는 관료 양성 기관인 [[제국대학]] 대신에 학문의 독립과 동서 문명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방적인 학풍의 와세다 대학을 선택하였다.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8356.html#ace04ou|인용 기사]] [[중화권]] 매체에 의하면, [[일본]] [[유학]]을 논할 때마다 [[영국]] QS 전세계 대학 순위에서 100위 안팎인 와세다대는 반드시 나온다. 그 인지도와 [[국제]]적 영향력은 이보다 의미가 크다. 일본에 유학가는 인원 10명 중 9명[* [[십중팔구]]]이 와세다대학에 지원한다는 말이 많다. 물론 일본 최고의 사립 명문대학인 와세다대는 [[한국]], [[중국]]과 인연이 깊고, 근대 [[1890년대]] 와세다대는 유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근현대 혁명가로 잘 알려진 유명 동북아 동문들을 많이 배출했다. 와세다대학의 14억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 내 인지도는 [[도쿄대학]]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 [[삼성]][* 후술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부자]·[[도시바]]·[[유니클로]]·[[카시오]]・[[코오롱]]·[[소니]]·[[롯데]][* [[신격호]] 초대회장]·[[포스코]][*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던 [[박태준]]] 등 유명 회사의 창업자와 [[CEO]]들이 와세다 출신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신익희]], [[박찬희(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도 배출했다.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동문이 일본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상술했듯이 역대 [[일본 총리]] 중 8명이 와세다 출신이다. 와세다는 우수 동문들을 많이 배출하여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크다. 동북아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이 매우 큰 학교로서, [[중화권]] 유학생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대]] 수치 기준 [[아시아]] 유학생은 5,053명으로 [[중화권]]이 89.15%를 차지했으며 이 중 [[한국인]] 학생이 836명, 중국 본토 학생은 3,362명, [[홍콩]] 학생은 66명, [[대만]] 학생은 362명으로 중화권 유학생이 전체 와세다 유학생 1만여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국인]]이 약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https://www.sohu.com/a/572301332_120172492|#]] [[https://www.waseda.jp/inst/cie/assets/uploads/2021/02/202011_jp.pdf|#]] [[https://m.mk.co.kr/amp/4012824|매일경제: 日 와세다大 재계인맥 화려]] >만약 중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본 대학은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같은 [[제국대학|구 제국]]의 명문 대학이 아니라, 전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름, ''''와세다대학''''을 떠올릴 것이다. [[1895년]] [[갑오전쟁]] 이후 [[청나라]] 정부는 일본으로 첫 유학생들을 파견했고, 점차 더 많은 중국인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시작했다. [[1905년]], 와세다 대학은 일본 내에서 독특한 "[[청나라]] 유학생 학부"를 설립하여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과정을 마련했고, 이곳에는 학사, 예비 과정 및 보충 과정이 있었다. 5년 동안 2,000명 이상의 학생이 청국 유학생 학부에서 공부했고, 그중 1,186명이 정식으로 졸업했다.[* 와세다는 당시에도 학사관리가 엄격하여 졸업률이 절반 정도밖에 안됐다.] 잘 알려진 중국 혁명가인 [[천두슈]](陈独秀), [[리다자오]](李大钊), [[쑹자오런|송교인]](宋教仁)[* 1968년 [[대한민국 대통령]] 건국훈장 수여. 중문명은 송자오런 정도로 읽으면 된다.] 등도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통계에 따르면, 근대 중국 혁명가 중 와세다대학 출신이 20명 이상이다.[* 중국 정부 설립 핵심인물 중 상당수가 와세다 출신이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와세다대학과 중국의 관계는 끊이지 않았으며, [[1979년]] 개혁 개방 초기에 중국에서 파견한 첫 번째 공적 유학생들을 와세다대학이 맞이했다. 그 후 100년 이상 동안 와세다대학은 수많은 중국 유학생을 받아들였으며, [[베이징대학]]과 자매학교여서,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합작 프로그램을 운영[* 이좌이다바(一抓一大把)라고 표현.]하고 있다. [[1998년]]과 [[2008년]]에, 중국의 두 국가 지도자가 와세다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했고, 중국 국내 언론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장쩌민]]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국가주석.] 그 결과 와세다대학의 명성은 중국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높아졌다. [[일본 국회의원]]의 거의 3분의 1, 많은 유명 회사의 창립자와 사장들도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https://m.sohu.com/a/644003046_479892/?pvid=000115_3w_a|인용 기사]] 대학 평가로는 일본 790여개 대학[* 한국은 400여개] 중 2024년 [[QS 세계 대학 랭킹]] 국내 9위, [[CWUR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23년 일본 8위, 전세계적으로는 2023-2024년 기준 QS 대학랭킹에서 2만여개 대학 중 199위를 차지했다. [[https://www.topuniversities.com/universities/waseda-university|#]] 또한 2023년 [[THE 세계 대학 랭킹]] 일본판에서 14위, 2023년 [[ARWU]]에서 일본 20-23위를 기록하였다. 2022년 [[CWTS 레이던 랭킹]] P기준에서 일본 15위, [[학술]] [[연구]] 성과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 교육기관 순위에서는 2022년 일본 15위를 기록했다.[* 약 790개 중에서 8위부터 15위는 상위 약 1%에서 2% 사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계산하면, 상위 1%는 7.9개 (790의 1%), 상위 2%는 15.8개 (790의 2%)이므로, 8위부터 15위는 이 두 비율 사이에 위치한다. 와세다는 [[의과대학]]이 없어 학술적 순위에서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상위 1-2%에 해당하며, [[OBOG]] 동문 측면에서는 일본 전체 2,3위를 다툰다.] 캠퍼스는 분산식 형태로,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은 대신 도쿄 23구를 비롯하여 일본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일본의 대학은 캠퍼스가 분산된 경우가 매우 흔하다.] [[신주쿠구]] 와세다 지역에 위치해 메인 캠퍼스로 기능하는 와세다 캠퍼스, 메인 캠퍼스 바로 옆에 동일 신주쿠구 내 이공학부가 있는 니시와세다 캠퍼스, 학생회관과 운동시설 그리고 문학부와 문화구상학부가 있는 도야마 캠퍼스[* 와세다 캠퍼스와 도보로 5~10분 정도의 애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교시와 교시 중간에 이 캠퍼스에서 저 캠퍼스로 서둘러 뛰어가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스포츠과학부 및 인간과학부가 위치한 도코로자와 캠퍼스, 혼조 캠퍼스, 히가시후시미 캠퍼스, 기쿠이초 캠퍼스[* [[나쓰메 소세키]]의 출생지인 그 기쿠이초다.], 기타큐슈 캠퍼스 등이 있다. 와세다와 니시와세다, 도야마, 기쿠이초 캠퍼스 근처에는 [[JR 동일본|JR]][[야마노테선]]・[[세이부 신주쿠선]]・[[도쿄메트로]] [[도쿄메트로 도자이선|도자이선]] [[타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駅)[* 약칭 바바역.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그리고 최초의 재패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철완 아톰]]의 고향이 되는 역이다. 만화 설정상 2003년 타카다노바바에서 태어난 아톰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부터 타카다노바바역 JR야마노테선의 출발 시그널은 아톰 오프닝 테마의 어레인지 버젼.], 도자이선 [[와세다역]], 도덴아라카와선 와세다역 등이 있어서 이동하기가 용이하다. 와세다 캠퍼스와 니시와세다 캠퍼스는 본래 지명을 따서 니시와세다, 오쿠보 캠퍼스였으나, 현 니시와세다 캠퍼스 쪽에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 [[니시와세다역]]이 생기는 바람에 명칭이 바뀌었다.[* 지명 '니시와세다' 또한 본래는 와세다마치가 아니라 도쓰카마치에 속했던 지역으로 대학 때문에 지명이 붙은 케이스.] 와세다대학의 [[대한민국]]과의 인연 측면에서는, [[고려대학교]] 출신과의 인연이 가장 많다. 고려대의 설립자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 이사장과 초창기 임직원, 교수진 등 다수가 와세다 출신이라, 깊은 연관이 있다. 상술하였듯 [[삼성그룹]] [[이병철]], [[이건희]],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등 정재계 유력인사 중 와세다 출신이 전통적으로 많아서 [[한국인]] 중 와세다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 초창기 국가 설립 핵심 멤버가 와세다 출신이라 [[중화권]]에서 자오다오티엔(早稻田)[* 와세다의 중국어 발음]의 브랜드력은 상당하다. 와세다는 아시아 사학 중에서 압도적인 탑티어 명문대라는 인식에, 입결 최상위권에 속하며, 적어도 동북아 한중일 3국에서는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 “돌이켜보면 와세다대학과 한국의 고려대학교는 역사적인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김성수를 비롯하여 한국 국내 정계와 재계에서 활약해 온 졸업생들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존재이자 본교의 자랑거리입니다.” - [[와세다대학]] 스카 코이치 부총장 > 와세다대학 측은 [[1973년]] 고려대-와세다 협정 체결 이후 끊임없이 발전되어 온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교류관계는 더욱 발전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중일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과 한일 밀레니엄 포럼 등으로 양교간의 교류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했다. - [[2018년]] 와세다대학은 중화권에서 [[베이징대학]] (북경대; 北京大) 측과 가장 교류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엮여있는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학부 [[학사]] 및 [[석사]] 그리고 [[박사]] [[복수학위]]를 얻을 수 있는 [[베이징대학]]은 와세다 대학을 하기와 같이 소개했다. > 와세다 대학은 1882년에 설립되었으며, 본부는 일본 도쿄도 신주쿠 구에 있는 일본의 유명한 명문 대학이다. 와세다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로 정재계, 재계, 문예계 인재를 배출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를 포함해 와세다대 출신이 8명이고, [[일본 국회의원]] 3분의 1 가까이가 와세다대 출신이다. [[소니]]·[[삼성]]·[[혼다]]·[[도시바]]·[[미쓰비시]] 등 수많은 유명 회사의 창업자와 사장이 와세다대 출신이다. [[1982년]] 북경대와 와세다대학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고, 30여 년 동안 북경대와 와세다대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교류협력관계를 확립하였다. 와세다대학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우호학교 중 하나다. [[http://www.oir.pku.edu.cn/info/1035/5546.htm|북경대 국제합작(협력)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