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혜인 (문단 편집) === 정치계 입문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평범한 삶을 꿈꾸던 용혜인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무엇보다 이 당시 용혜인은 위에서 언급된 ‘가만히 있으라’ 운동으로 인해 [[기소]]를 당하여 형사법정을 드나들었던 시절인지라, 공무원시험에 기껏 합격한다 한들 유죄판결로 인해 당연퇴직당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기 때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6/0000037567?sid=102|기]][[http://www.ddanzi.com/ddanziNews/84348506|사]]에 의하면 첫 기소가 2014년 10월 31일이라는데, 세월호참사 발생 이후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 같진 않다. 참사 발생 이후에 침묵시위 등 가만히있으라 운동을 주도하며 접은 듯]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600만 명의 서명을 모았지만,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정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2016년 만 2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노동당 비례대표 1번 후보로 나왔는데, 기본소득 30만원과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허나 노동당 득표율이 저조하여 낙선했다. 2018년 겨울 [[신지혜]], [[신민주]], [[서태성]]과 함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정당으로 노동당을 변화시키겠다는 기조를 내세우며 당 대표단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대표가 된 후 기본소득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대회에 올라간 당명 개정 안건이 당원들의 상당한 반발을 사고 부결되면서, 대표를 사퇴하고 본인 지도부 구성원 및, [[금민]] 등 구 사회당 계열 인사들과 노동당을 집단 탈당, '''[[기본소득당]] 창당 운동'''에 돌입한다. 이후 2019년 8월 24일에 [[https://www.facebook.com/basicincomeparty.kr/posts/pfbid0uvqE4SPCs5TvEsqdM41QqNNDHaBRPbToqm7PLY299orGwZ3AFsDdvwWCGzcCp8sxl|기본소득당 창당]]을 위한 위크숍을 열고 기본소득당 창당을 결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