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을기내 (문단 편집) == 창작물에서 ==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진족]]의 추장. 배우는 [[윤용현]].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에 따라 녹둔도 전투 즈음에 등장을 한다. --선조실록과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으로 보면 그야말로 좀비-- [[마니응개]], [[사송아]] 등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으며, 식량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상황에서 오형의 여동생 곱단을 납치했는데, 이로 인해 이순신이 포로를 풀어주는 대신 농기구, 농업 기술을 지원하면서 농사에 뛰어난 농군들을 파견하고 [[조선]]에 잡힌 여진족의 포로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원균]]이 [[여진족]] 포로를 모두 죽이자 이순신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정해왜변이 일어날 때 이순신이 사람을 보내 여진족을 정찰하는 것을 알았지만 적이 규모를 알고 두려움에 떨게 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놔준다. 조선군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공격을 늦추다가 이순신이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녹둔도를 비운 사이에 부하들에게 녹둔도를 공격을 지시해 함락하며, 포로로 잡아온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시신을 불에 태웠다. [[6진]]을 노렸기에 눅둔도를 점령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일부러 노략질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서 자신들의 전체 규모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여진족]]에 연합한 다른 추장들이 녹둔도를 점령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연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일부러 점령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조선군을 공격하는 시늉을 해서 조선군을 겁먹게 하며, [[백의종군]]을 한 이순신에게 투항을 권유하면서 다음번에는 녹둔도와 함께 이순신의 목숨을 접수하겠다면서 물러난다. 북병영의 병사들이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받자 북병영의 병사들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1588년 1월에 일어난 시전부락 전투가 일어났다. 조선군에게 기습을 받자 맞서 싸우다가 이순신에게 패해 포로로 붙잡히며, [[이순신]]에게 직접 죽는다. [[분류:퉁구스/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