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간조선 (문단 편집) == 개요 == 月刊朝鮮[* 월간조선 잡지 로고도 한자로 쓰는 편이다.] 조선뉴스프레스의 [[잡지|월간지]]. 보통 '''월조''' 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낙선]]에 의하여 '세대'라는 제호로 창간·발행되었다가 [[1980년]] 4월 1일에 조선일보사가 인수하여 월간조선으로 제호를 바꿔 발행되어 출판국 월간조선부가 업무를 맡았으나, 2001년 1월 2일자부로 독립법인 월간조선사로 분리독립하여 2001년 2월호부터 월간조선사 명의로 발행하였다.[* 2001년 분리독립 이후에도 조선일보와 같은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사옥을 함께 쓰고 있다.] 월간조선사의 초대 사장은 당시 편집장이었던 [[조갑제]]. 그는 월간조선 분리독립 이후 2004년까지 월간조선 대표이사와 편집장을 겸직하였다.[* 조갑제는 1983년 조선일보사 월간조선부 기자로 입사하였으며 1996년~1997년 해외연수로 잠시 물러났다가 1998년에 월간조선으로 복귀하였다.] 1980~90년대만 해도 조갑제 기자를 주축으로 한 여러편의 특종을 내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당시로서는 최대한의 자료를 가지고 공정하게 서술한''' 조갑제 씨의 유고 연작을 비롯하여 지금도 심심하면 터지는 고위공직자 자제의 병역비리 논쟁 등을 싣기도 했다. 월간조선사는 그 후 2010년부터 조선뉴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으며 [[주간조선]], 탑클래스, 여성조선, 월간 산 등 조선일보에서 나오던 잡지계열은 모두 조선뉴스프레스에서 발행하고 있다. 과거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월간조선 기자들 중 능력을 인정받는 젊은 기자들이 조선일보로 발탁되어서 일간지 기자로 활발히 활동하는 등의 일이 간혹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의 초대 대변인을 지낸 [[강인선]]이 바로 월간조선 기자로 입사해서 조선일보 본사로 발탁되었던 경우였다.] 세월이 흘러 월간지나 주간지를 막론하고 시사 잡지 시장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아예 종이신문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 지금은 그러한 일은 사실상 없다. 전반적으로 주간지나 월간지들이 본사의 일간지와는 아예 별개의 매체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정착된지 이미 오래인 것. 이 때문에 지금은 월간조선이나 주간조선 등의 자매지들은 사실상 조선일보 그룹 내의 [[유배|유배지]] 정도로 인식되는 형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신동아]], [[월간중앙]] 등의 타사 자매지들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본사의 주류 라인에서 밀려나 승진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편집국 간부들의 한직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젊은 주니어급 기자들의 충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편.]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한문 혼용이었고 2000년대까지도 한자가 꽤 많았으나 2010년대부터는 한자 비중이 확연히 줄었다. 2020년 현재는 본문은 다 한글로 쓰고 한자는 소제목 등에서 보조문자로 쓰이는 정도로 여느 신문과 비슷한 수준이다. 부록의 질이 좋을 때가 많았다. 명연설집을 모아서 MP3 CD와 함께 준다던가. 실제로 [[12.12 군사반란]] 당시 녹음 테이프라던지([[https://youtu.be/HMTQTsPNWYg|백업본 1편]], [[https://youtu.be/khdcZGVm5p4|백업본 2편]]), [[김정일]] 육성 녹음 테이프([[https://youtu.be/Js1clGfdn2E?t=157|방송자료로 활용된 버전]]) 같은 것은 모두 월간조선이 최초로 부록으로 공개한 것이다. 맥나마라의 회고록 최초 번역소개 등의 문화면 기사도 나름 볼만한 게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