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길중 (문단 편집) === 정계 활동 === 1948년 6월 8일 헌법 제정 전문위원 10인에 뽑혔으며,[* [[유진오]],[[고병국]],[[임문환]],[[권승렬]],[[한근조]],[[노진설]],노용호,차윤홍,김용근,[[윤길중]] ]국회법기초위원회 기초 전문위원 5인에도 뽑혔다.[* [[전규홍]],노용호,차윤홍,김용근,[[윤길중]] ]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에서 부의장이 된 [[조봉암]]과 가까워져,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의 선거사무장을 맡았고 1956년 [[진보당(1956년)|진보당]] 창당에 참여하여 간사장을 맡았다. 1958년 1월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1959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1960년 [[사회대중당]] 결성을 주도했다. 같은 해 7월 사회대중당 소속으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원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혁신계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 과정에서 투옥되어 1968년 4월까지 7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3선 개헌]]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970년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입당하였고, 1971년 7월 신민당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정 선거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이 된 것을 계기로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1980년 12월 [[민주정의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 12,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 부의장(1983.4~1985.4), 민주정의당 대표위원(1988.5~1989.1), [[민주자유당]] 상임고문(1990.3)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1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 유족들이 혁명재판소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 냈고,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여 승소판결을 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684202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