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묘왜변 (문단 편집) === 1차 침공 === 1555년 5월 16일(음력), [[전라도]] 관찰사 김주(金澍)로부터 ''''5월 11일에 왜선(倭船) 70여 척이 달량(達梁) 밖에 와서 정박했다가 이진포(梨津浦)와 달량포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육지로 상륙하여 성 아래의 민가를 불태워 버렸고 결국 성이 포위되고 말았다.''''는 내용의 장계가 조정으로 올라왔다. 기록에 의하면 왜구들이 해안가로 상륙해서 행패를 부리자, 가리포 첨사(加里浦僉使) 이세린(李世麟)이 즉각 병사(兵使) 원적(元績)에게 이를 알려서 원적이 장흥 부사(長興府使) 한온(韓蘊), 영암 군수(靈巖郡守) 이덕견(李德堅)과 함께 그를 구원하려고 달량으로 달려갔다가 포위되었다고 한다. 결국 한온은 전사하고 남은 조선군 병력은 달량에서 버티다가 화살이 다 떨어지자 왜구에게 화친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하여 결국 점령당하고 그렇게 해안가 일대는 순식간에 장악당하고 만다. 한온을 대신해서 온 강진현은 대군을 이끌면서도 겁먹어 꽁무니를 빼고는 조정에는 '''"부하들이 명령을 듣지 않사옵니다."'''라고 거짓 장계를 올리고 이에 기세가 오른 왜군이 '''"이 길로 걍 한성까지 가자!"'''라고 하는데 이때 [[이윤경]]과 [[이준경]] 형제가 오면서 전세가 급변한다. 적극적으로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데 그런데도 겁먹어하는 남치근[* [[임꺽정]]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 조정에서 백성들 위로하라고 보냈더니 가혹한 처벌만 일삼은 인물이다.]에게 호통을 치는 등 준비를 잘 갖춰 적을 물리친다만, 결정적인 타격은 주지 못하고 적은 유유히 사라지고 만다. 이유는 그렇게 이겼는데도 인근의 장군들이 왜구를 무서워서 나올 궁리를 하지 않아서였다. 결국 왜구들을 완전히 격멸시키지는 못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