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음운론 (문단 편집) ==== 국어학의 무덤 ==== 음운론 분야 중 자질이론은 국어학의 무덤으로 평가받는다. 자질이론 전공자가 사실상 멸종하다시피 하였기에 국어국문학과에서 양성된 음운론 연구자들 에서는 자질이론에 관심이 없거나 미신적으로 자질을 상정하는 관행이 흔하다. 즉, 음성학적 기반을 가지지 않거나 논리적 기반이 희미한, 단순히 한국어만을 설명하기 위한 음운자질들을 무비판적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국어학이 닫힌 학문 분야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기인한다. 워낙에 국어학 전체 전공자수가 적은데다가 80년대 이후 통용되는 자질이론을 전공한 사람이 없어져버렸고, 따라서 자질 전공자들은 2010년대에 이미 학계를 떠난 상태이다. 따라서 2010년대 이후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훈련받는 예비 국어학자들은 자질이론이 음운론의 세부전공으로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어학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개별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더라도 영어논문 작성이 빈번하고 일반언어학과의 교류가 많은 독일어나 스페인어 북유럽 언어들의 언어학, 심지어 일본어학과 중국어학의 경우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의 장단음 구분 그리고 동남방언의 성조가 최소한의 소리 단위(-소)인지 아니면 자질인지에 대해서 국어학계와 언어학계의 인식차이가 존재한다. 국어학계에서는 장단음과 성조를 '운소'라 하여 마치 분절음과 같은 위상을 가진 것처럼 보지만, 언어학에서는 운소 단위를 사용하지 않고, 성조와 장단음을 음소 혹은 음절에 덧입혀지는 자질(초분절자질)인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인식차이는 결정적으로 두 학문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용어의 차이를 야기한다. [[https://linguisting.tistory.com/21|(참조)]] 운소 개념은 1950년대 이전까지 존재하다가 폐기된 개념이다. 결정적으로 아프리카 언어 등에서 floating tone 등의 실증적 사례들이 발견되면서 성조와 모음장단 그리고 강세 등의 개념이 자질총(bundle of features)으로서의 무슨 -소(-eme)가 아니라 하나의 자질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학계 전반에 퍼졌다. 즉, 한국어 자음을 구성하는 [긴장성] 자질이 독자적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것처럼, 장단과 성조 역시 독자적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음절수준에 덧입혀져야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다. 심지어 1980년대 이후로 feature geometry와 tier적 분석이 음운론에서 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분절음 tier와 장단/성조는 아예 다른 tier에서 분석되게 되었다. 따라서, 거칠게 말하자면, 초분절 현상에 관련한 국어학의 수준은 주시경-최현배 시대에 머물러있는 것으로 볼수있다. 주시경이나 최현배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일반언어학의 최신 학문경향 상 한국어 운소 설정이 매우 타당했다. 그러나 현대음운이론의 관점에서 국어학계의 '운소' 설정은 이미 뒤쳐져버린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남한의 경우) 최현배 이후의 국어학의 자질론 연구가 음운론의 발전 과정에 동참하기는 커녕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특히 한국어의 경음-평음-격음 구분에 착안한 김진우의 후두자질 이론이 SPE 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 내지는 '국어를 설명하지 못하는 외국이론' 등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 언어학의 설계자들" 특집 김진우 교수 편을 보면,[[http://doi.org/10.18855/lisoko.2021.46.3.013|#]] 김진우 교수가 MIT에서 포닥을 하고 있던 시기에 SPE의 집필이 이루어졌고, 김진우는 당시 이미 자질이론의 권위자였기 때문에, SPE 7장 자질 체계 구상에 본인이 참여했었다고 한다.] 한국인을 포함한 일반언어 연구자들의 연구에는 귀를 막아버리고 최현배의 수준에서 답보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현대 언어학의 성과를 따라온다면 '운소' 단위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국어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운소' 개념을 버린 것은, 한국어에 대해 무지한 외국 학자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상범(언어학자)|전상범]] 이후로 한국인 언어학자들도 모두 이 견해에 동참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