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덕일/비판 (문단 편집) ==== 묘예(苗裔)를 묘족의 후예로 오독 ==== >{{{#c80000 『사기』 흉노열전은 "흉노의 선조인 하후씨는 묘족(苗族)의 후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흉노 역시 치우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02/2006070270253.html|"이덕일 사랑: 河西走廊", 조선닷컴, 2006-07-02]]}}} 위 인용문에서 이덕일은 흉노가 묘족의 후손이고(A=B'), 묘족은 치우의 후손이니(B=c'), 흉노는 치우의 후손(A=c")이라는 삼단논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흉노가 묘족의 후손이라는 말의 근거로서 사마천이 쓴 사기 흉노열전의 첫 구절을 저렇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레전설|이덕일이 행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오역]]'''으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단 사기에서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匈奴, 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 曰淳維。 >흉노, 그 선조는 하후씨의 __묘예(苗裔)__인데 순유라고 했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s://zh.wikisource.org/wiki/%E5%8F%B2%E8%A8%98/%E5%8D%B7110|『사기』 흉노열전, 중국어 위키문헌]]}}}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덕일은 밑줄 친 묘예(苗裔)라는 단어를 '묘족의 후예'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묘예라는 단어가 단순히 '먼 후손'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라는 것이다. 당장 네이버 국어사전만 보더라도 바로 이 묘예라는 말의 정의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것은 한글을 한자로 변환할 때 자동완성으로까지 입력할 수 있는 단어다. 이덕일은 이 정도로 기본적인 단어를 찾아보지 않아서 오역을 저지른 것이다.[* '''묘예^^2^^(苗裔)''' (발음: 묘ː예), (명사) 먼 후대의 자손. 비슷한 말: 묘맥(苗脈), 묘윤(苗胤){{{#!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3948400|"묘예", 네이버 국어사전]]}}}] 더군다나 이덕일의 해석에서는 문장구조도 문제다. 묘예가 나오는 대목의 문장구조는 'A之B也'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어조사 之가 앞 체언을 관형어로 만들어 'A의 B이다'라고 해석된다는 것은 한문 문법에서도 기초 중의 기초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흉노의 선조=하후씨의 묘예"로 해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런 기초적인 문법을 몰라서 "흉노의 선조=하후씨=묘예"라는 오역을 저질렀다. 설상가상으로 그 어떤 사기 번역본도 이덕일과 같은 오역을 하지는 않았다.[* 사마천, 박일봉 역, 『사기(열전Ⅱ)』, 1994, 180쪽, "흉노(匈奴)의 선조는 하후(夏后:禹)씨의 후예로, 순유(淳維)라고 했다."; 사마천, 정범진 외 역, 『사기 6 - 열전 중』, 1995, 795쪽,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의 후예로 순유라고 불렀다."; 사마천, 김원중 역, 『사기열전 · 하』, 2002, 253쪽,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의 후예로 순유라고 불렀다."; 사마천, 노만수 역, 『사기영선』, 2012, 449쪽, "흉노는 그 선조가 하후씨의 후예로 순유라고 불렀다."] 이쯤되면 도대체 이덕일은 어떤 사마천이 쓴 사기를 참조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c80000 하후(夏后)는 순임금이 천자가 된 후의 국호이기도 한데, ‘맹자(孟子)’는 순임금을 동이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 ‘사기’의 ‘묘예(苗裔)’라는 말을 단순히 후손으로 해석하지 않고, ‘묘족의 후예’라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7/2006071770344.html|"묘예가 ‘묘족의 후예’란 뜻인가?", 조선닷컴, 2006.07.17]]}}} 이에 용인에 사는 곽종경이라는 독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자, 이덕일도 여러 사료를 고려해 해석했다는 면피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여러 사료'라는 것이 고작 하후씨는 순임금(a'=d)이고, 순임금은 동이족(d⊂C)이고, 묘족도 동이족(B⊂C)이니 고로 하후씨는 묘족(a'⊂B)라는 건데... 그런데 척 보기에도 알겠지만, 이거 '''[[논리적 오류/형식적 오류#s-4|매개념 부주연의 오류]]'''다. 더군다나 각각의 진술도 하나같이 말이 안 된다. 하후씨는 순임금이 아니라, 우임금을 가리키는 말이고, 동이족이란 개념은 허구라는 것이 확실하며, 그마저도 묘족은 남만에 속하지 동이에 속하는 족속이 아니다. 또한 순임금과 우임금이 묘족의 일원이라면, 오죽 친정과 사이가 안 좋았기에 묘족이 사사건건 반란을 다 일으켰을까?[* "묘민(苗民)이 한 달 동안 명령을 거역하자, 우(禹)가 정벌하러 나섰는데 익(益)이 덕을 펴라고 권하니, 회군하였다. 이에 순임금이 크게 덕을 베풀며 방패와 깃, 일산 등을 가지고 추는 무무(武舞)를 추게 하였더니, 70일 만에 유묘(有苗)가 항복하였다."[br] {{{#!wiki style="text-align: right;"[[http://sillok.history.go.kr/id/kob_10205007_004|『시경』 대우모, 조선왕조실록 주석에서 재인용]]}}}] 결국 이덕일의 부연설명은 단순 오역이었던 자신의 실수를 더욱 완벽한 오류로 만들어준 셈이다. 이쯤에서 이덕일이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여러 정황상 이덕일과 마찬가지로 한문을 못 읽는 환빠였던 이중재의 사상을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재의 환타스틱한 사료 오독에 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 [[http://shaw.egloos.com/1727514|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