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덕일/비판 (문단 편집) ==== 영주(營州)를 수성현으로 오독 ==== >{{{#c80000 그럼 현재 갈석산이 있는 창려현이 과연 과거의 수성현인지 살펴보자. …… 먼저 『수서』「지리지」 '상곡군'조를 보자.}}} >>{{{#green 수성현 : 옛날에는 무수(武遂)라고 불렀는데, 후위(後衛)에서 남영주(南營州)로 삼았다. 영주(營州)는 5군 11현을 비준했는데 용성 · 광흥 · 정황현은 창려군(昌黎郡)에 속한다. 석성 · 광도현은 건덕군에 속한다. 양평 · 신창현은 요동군에 속한다. 영락(永樂)현은 낙랑군에 속한다. 부평 · 대방(帶方) · 영안(永安)현은 영구(營丘)군에 속한다.}}} >{{{#c80000 수성현은 후위 시절 남영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11개 현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용성 · 광흥 · 정황 · 석성 · 광도 · 양평 · 신창 · 부평 · 대방 · 영안 현이다. …… 수성현에 속했던 11개 현이 5군으로 나뉜 것으로 봐서 수성은 상당히 넓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수성현을 포함했던 상곡군은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2009, 92~93쪽}}} 위 인용문에서 이덕일은 수성현은 과거 남영주였는데(a=B'), 남영주에는 11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으니(B⊃c,d,e…), 수성현에는 11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a⊃c,d,e…)는 집합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군현제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만 있어도 내뱉을 수 없는 '''정말 완벽하게 멋진 개소리다.''' 정말 상식적으로 어떻게 현(縣) 아래에 현(縣)이 편제될 수 있다는 것일까?[* 다만 현(縣)은 아니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시(市) 아래에 시(市)가 편제되어 있다. [[시(행정구역)/중국]] 문서나 [[지급시]] 문서 참고.] 사실 위에서 녹색으로 쓰인 부분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遂成, 舊曰武遂。後魏置南營州, 准營州置五郡十一縣。 >수성, 예전에는 무수라 했다. __후위(後魏)__가 남영주를 __두었는데[置]__, 영주를 __본따[准]__ 5군 11현을 두었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s://zh.wikisource.org/wiki/%E9%9A%8B%E6%9B%B8/%E5%8D%B730|『수서』 지리지 중, 중국어 위키문헌]]}}} 즉 이덕일은 이 문장을 읽으면서 세 부분에서 오역을 저질렀다. 첫째는 '후위(後魏)'를 음이 같은 '후위(後衛)'로 표기한 것인데, 이는 한글을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잘못 입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흔한 오타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바로 옆에 한자가 올바르게 표기된 원문이 있다는 것. 또한 후위(後衛)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뒤쪽의 호위나 방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일 뿐이다.[* '''후위^^1^^(後衛)'''(명사)1. 뒤쪽의 호위나 방위. 2. <군사> (같은 말) 후위대(주력 부대의 뒤쪽을 엄호하는 부대). 3. <운동> 축구ㆍ배구 따위에서, 주로 수비(守備)를 맡는 경기자.{{{#!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43598600|"후위", 네이버 국어사전]]}}}] 둘째로 '수성현에 남영주를 두었다'는 말을 '수성현을 남영주로 삼았다'고 오역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후자의 표현은 수성현을 남영주와 동일한 실체로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수성현은 남영주에 소속된 일개 현으로서, 남영주의 장관이 머무르는 치소가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즉 이는 수원시에 경기도청을 두었다는 말이나 온천동에 아산시청을 두었다는 말과 같은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오역이 가져온 나비효과는 굉장한 수준이어서, 수성현은 졸지에 11개나 되는 현을 거느린, 이덕일의 말에 따르자면 "상당히 넓은 지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수성현을 포함한 상곡군은 당연히 더 넓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기가 막힐 뿐이다. 이 오독을 대한민국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이 성립된다. >전주부는 조선시대 전라도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55개 군현이 있었다. 그 이름은 광주 · 나주 · 능주 · 제주 · 남원 · 담양 · 무주 · 순천 등이다. 전주부에 속했던 55개 현이 [[23부제|5부]]로 나뉜 것으로 봐서 전주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전주시를 포함했던 전라북도는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평구는 조선시대 부평도호부로 불리웠는데, 7개 군현이 있었다. 그 이름은 강화 · 인천 · 해풍 · 김포 · 양천 · 교동 · 통진이다. 부평구에 속했던 7개 군현이 오늘날에는 3개 시로 나뉜 것으로 봐서 부평은 상당히 넓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부평을 포함하는 인천광역시는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러한 이덕일의 논리에 놀아난다면 제주도는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고, 강화도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다는 말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덕일은 준(准)이란 한자를 '비준하다'란 뜻으로 해석해서 남영주를 영주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그 밑에 5군 11현이 있는 것으로 오역했다. 또 문제는 그 아래에 있는 수서 지리지 유성현조에 거짓말처럼 다시 한번 영주가 다시 한번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영주의 행정구역은 남영주의 행정구역과 겹치기도 하고, 또 겹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영주와 영주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그 해답은 위서 지리지의 남영주 조에서 찾을 수 있다. >南營州: 孝昌中營州陷, 永熙二年置。寄治英雄城。 >남영주: 효창 중에 영주가 함락되자, 영희 2년에 두었다. 영웅성을 빌려 다스렸다. >{{{#!wiki style="text-align: right;"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ko&setId=712187&position=0|『위서』 지리지 상,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북위의 효창 연간(525~528)에 화북은 [[육진의 난]]으로 개판이었고, 이 와중에 영주 일대의 지방통치도 [[개발살]]났다. 그러자 육진의 난을 진압한 북위는 일단 영웅성에 남영주를 설치하여 이 지방을 수습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주가 복구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남영주는 [[북제]] 시대에 창려군 하나만으로 근근이 유지되다가, 결국 수나라 때 폐지되었다. 즉 남영주는 530년 이전의 영주에 소속되어 있었던 지방 조직을 본따서(准) 자신들의 휘하 조직을 구성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전후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덕일의 눈에는 이 한자가 그저 승인했다(准)는 뜻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덕일의 논리에서 '영주'와 '남영주'는 완전히 동일한 실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 나아가 이덕일은 이를 통해 군현의 소재지가 이동하던 당시의 지방 상황을 부정하고, 마치 수성현이 고조선 멸망 이후 70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다시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설|낙랑군은 중국에 있었고, 이를 부정하는 너희는 매국노]]"라는 비국민 논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그의 오독이 가지는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