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병철 (문단 편집) === 사망 === 1980년대 [[자동차]]와 전자는 융합된다고 본다고 적극적으로 자동차 사업 진출을 원했지만, 이땐 중공업 중복 투자 정리가 중요한 과제였고, 자동차 산업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를 겨우 마친 시절이라 포기했다. 말년에는 [[건강]] 문제로 꽤나 고생을 했다. 평소 [[흡연]]을 즐겼던 것이 원인이 되어 [[폐암]]이 발병[* 이병철을 진찰한 일본인 의사가 '''"가벼운 질환이 있는데,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완곡하게 말하는 걸 듣고 눈치를 챘다고 한다.]했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호흡기 전반과 흉부 건강도 상당히 악화되었다. 또한, 치아 건강도 좋지 못했는데 특히 [[치주과|치주]] 손실이 심각[*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유럽에서 [[임플란트]] 시술이 활발해졌고, 당시에는 골유도재생술은 임상 시험 단계였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했을 것이다.]해 말할 때나 저작시 통증이 극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말년의 모습에선 이런 건강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말년의 여러 인터뷰에선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며, 목소리가 거칠고 발음이 정확하지 많은 모습을 보인다. 또한, 치주 문제로 인해 입술을 항상 오므리고 있었다. 결국 10년에 가까운 투병 생활 끝에 1987년 11월 19일 저녁 5시 5분,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77세로 [[사망]]했다. 사후 이태원동 자택에 빈소가 차려져 당시 국회의장 이재형, 민정당 총재 노태우, 민주당 총재 김영삼, 평민당 총재 김대중, 릴레이 주한미국대사 등 각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87/nwdesk/article/1798352_29505.html|뉴스데스크]].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11월 23일 호암아트홀에서 영결식을 거행하였다. 시신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부지에 안장되었는데, 본인 의지와 달리 [[묘]] 위치가 삼성물산 구역으로 되어있다 보니 후손들의 배임 논란이 있다.[[http://4th.kr/View.aspx?No=287225|#]] 여담으로 폐암은 유전될 수 있는데, 맏아들 [[이맹희]]도 폐암으로 세상을 떴으며, 3남 [[이건희]] 역시 폐질환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또 이병철의 대를 잇는 범 삼성가에는 일반인보다 약한 폐와 [[샤르코-마리-투스 병]][* 약어로는 CMT,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돼 점점 기형화되는 희귀병. [[박두을]] 여사 집안의 유전질환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이재현(기업인)|이재현]]이 이 병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이부진]]도 이 병의 인자가 있어 발병할 수도 있다고 한다.]이 유전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건희는 [[삼성의료원]]에 입원 전까지 겨울에는 주로 [[하와이]] 별장으로 떠났으며, [[이재용]]도 집 공기 상태가 하와이 별장에 준할 만큼 맑게 해놓는다는 [[소문]]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