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이명 (문단 편집) === 사후 === 가족들이 대거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아들 이기지, 조카 이희지, 사위 김용택이 죽고 유일한 손자 이봉상을 노비로 만들라는 명이 내려오자 이이명의 넷째 딸이 어머니를 도와 이봉상을 피신시킨 뒤 집안 종 중 나이와 용모가 비슷한 아이를 강에 빠져죽게 한 뒤 사망으로 위장했다.[* 영조에게 올린 김씨 부인의 상언에 의하면 종에게 백마강에 빠져 죽을 수 있느냐 물었더니 비분강개하여 사양하지않고 빠져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넷째 딸 완산 이씨의 묘지명에는 이씨가 종을 설득하였으며 종도 스스로 죽은 게 아니라 빠뜨려 죽게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사실 그대로 알릴 수 없어서 거짓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라면 이는 살인죄가 되는데 살인죄는 사형이다. 조선시대에는 노비라 할지라도 왕의 허락 없이 사람을 죽인다면 명백히 살인죄가 되었다. 그러니 설득을 해서 자살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선 말기로 갈수록 당리나 가문 중심으로 변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의미이거나 노론 4대신 혹은 노론 전체가 왕(경종)을 대하는 시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이명과 마찬가지로 조태채도 죽음과 관련된 야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조태채에게 내린 사약을 엎어버린 노비 이야기다. 사약은 왕이 하사한 것이므로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으며 받을 때는 감사의 의미로 절까지 올려야 했는데 노비 따위가 엎어버리는건 말아 안 되기 때문. 사약과 관련된 야담들 중에서 사약을 엎었다는건 왕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이명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어쨌건 원칙에 따라선 이봉상이 순순히 노비로 끌려가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일개 죄인의 가족들이 멋대로 빼돌리고 종 하나를 죽게 하여 모면하고자 했으니 이 역시도 왕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는 노론 4대신이 억울하건 말건과는 상관없어서 원칙상 내가 억울하더라도 왕이 어떤 벌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아야 하는게 원칙이다. 정말 왕이 연산군급 실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또 참수하라는 명도 아니고 노비로 만드는 것이라 살긴 사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며 복권되어 가문이 복구될 수도 있다. 오히려 만일 경종이 장수하고 또 영조가 즉위하지 못했다면 이봉상은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기에 입지가 애매해졌을 것이다. 심지어 후손들도 마찬가지라 '역적의 후손'이므로 어디 드러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영조가 즉위하자 부인 김수혜는 시동생 이익명에게 사실을 알렸고, 이익명이 상소를 올리자 영조가 죄를 묻지 않고 벼슬을 내렸다.[* 영조실록 1년 4월 25일자 기사][* 이재 <삼관기> 니녕부사 부인 김시 샹언] [[경종(조선)|경종]]의 죽음으로 영조가 즉위하자 복권이 되었지만, 탕평책으로 인해 복권과 복권 취소가 계속되었다. 결과는 복권되는 것으로 끝났다. 삼수의 옥을 꾸민 아들 이기지는 이이명의 고부사 일행에 동행해 천주교 선교사와 교류하고 성모자상과 서양 서적, 기물들을 얻어오는 등 70년 후 [[북학파]]의 선구자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삼수의 옥으로 죽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