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인직 (문단 편집) == 일생 == 1862년([[철종(조선)|철종]] 13년) 7월 27일에 경기도 음죽현 동면 거물리(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노탑2리 거머리마을)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관비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도쿄]]정치학교의 청강생으로 입학한 1900년([[광무]] 4년) 이전까지의 행적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유학 시절 우수한 성적을 기록해 [[러일전쟁]] 때 [[일본]] 해군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종군하면서부터 출세길이 열린다. 전쟁 후 [[일본]] [[통감부]]의 추천으로 실세 [[이완용]]과 인연을 맺어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들어간 것. 이 때부터 친일 행적이 시작됐다. 이후 [[이완용]]의 추천으로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을 맡게 되았고, 이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신소설]]의 집필에 들어갔다. 1906년(광무 10년) 《[[만세보]]》에 〈[[혈의 누]]〉 등 '''친일소설'''을 연재하고,[* 상편은 만세보에 연재하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은 1913년 2월부터 6월까지 6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1908년([[융희]] 2년)에는 [[원각사]]라는 서양식 [[신파극]] 극장을 만들어 '''친일희곡''' 〈[[은세계]]〉를 상연했다. 이 공(?) 때문인지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로부터 [[성균관]] 대사성직을 임명받아 죽기 전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낭비가 심했는지 생활은 가난했다. 자전소설인 1912년 《빈선랑의 일미인》(가난한 조선 남자의 일본인 아내) 에서는 돈이 없어 사기를 쳐서 돈을 벌 목적으로 옛친구를 만나고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즉 이인직은 일본식 저택을 지어서 살고 있었는데 이를 유지할 비용이 없었던 듯하다.] 1916년 11월에 신경병으로 사망했다. 언제 입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의 신종교인 [[천리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1916년에 사망했을 때에도 천리교 예법으로 장례식을 치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