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충순 (문단 편집) == 생애 == 1946년 함경도 명천에서 태어났고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야구가 하고 싶어서 대광중으로 옮기느라 중학교 1년 유급되었다. 경동고 1학년 때까지는 포수로 뛰다가 당시 [[김일배]] 감독이 "키(185㎝)가 크니 투수를 해보라"라고 권해서 2학년 때부터 투수로 활약했다. 고교 졸업 후 1966∼1975년 실업팀 한국전력에서 [[김명성(1946)|김명성]] 전 롯데 감독과 함께 주전 투수로 활약했다. 1976년 마산상고 감독, 1982년 중앙대 감독을 거쳐서 1983년 OB 베어스 2군 코치로 발탁됐다. 그의 아들 이준서씨는 "김성근 감독님이 뽑아주셨다. 그 후 프로야구에선 김성근 감독님이나 강병철 감독님과 늘 같이하셨다"고 말했다. 1986년 MBC 청룡 코치로 활약한 뒤 롯데와 한화 시절엔 강병철 감독과 함께 했고, 쌍방울 시절엔 김성근 감독, SK 시절엔 다시 강병철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1990년 롯데 코치로 부임하자마자 전해 부상으로 1년간 활약하지 못한 윤학길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훈련시켰고, 1992년엔 [[염종석]]을 발굴했다.[* 염종석은 부산고 졸업 후 원래 경성대에 갈 예정이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갑자기 롯데에 입단한 신인이었다.] 염종석은 개막전 엔트리부터 합류하며 35경기에 등판, 17승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01을 기록하며 그해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휩쓸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4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7로 우승의 주역이 됐다.[* 당시 기록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8.40으로 KBO 역사상 역대 신인 최고로 남아있다.] 프로야구 코치 생활을 끝낸 뒤에는 전주고·연세대 인스트럭터로 일했고, 2007년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 어린이에게 야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2023년 1월 28일 [[파킨슨병]]으로 타계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생전 2011년 약속한 대로 30일 시신 기증 절차(한양대병원)가 진행될 예정이다.[[https://www.yna.co.kr/view/AKR20230129017400505?input=1195m|#]]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코치]][[분류:1946년 출생]][[분류:2023년 사망]][[분류:명천군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출신]][[분류:투수]][[분류:한국전력공사 야구단/은퇴, 이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