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현일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한창 세대교체가 진행중이던 1997년 한국 배드민턴계가 주목하던 유망주였다. 차근차근 성장을 밟아가다가 약관 20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서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 주자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각종 대회에 나가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 다른 종목에서는 모두 올림픽을 제패했지만,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던 남자 단식에서 기대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세계랭킹 2위 및 올림픽 전에 열린 프레 올림픽 우승으로 기대를 모았다. 내심 금메달, 못 해도 메달은 따지 않을까 전망했었지만, 아테네 올림픽에서 16강전에서 패하면서 조기 탈락하고 만다. 반대로 2인자 격이었던 [[손승모]]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은메달을 따면서 이현일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랬고, 한 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남자 단식 선수로는 최초로 2006년 전영오픈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곧바로 다시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 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비록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배드민턴의 최강국이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등이라서 아시안 게임=세계선수권이다. 즉, 다른 종목과 달리 아시아가 최강인 종목이라 아시안 게임도 치열하다.] 그런데 2007 코리아오픈에서 1회전 탈락하면서 의욕을 잃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미련이 남아서 다시 대표팀에 컴백,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두 차례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올림픽의 다크호스로 손꼽히게 되었다. 특히 코리아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인 린단을 잡은 것이 컸다. 대표팀 은퇴와 복귀라는 우여곡절 속에 다시 랭킹을 끌어올리고 맞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4강까지 순항했지만, 4강전에서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에게 1-2로 아깝게 지고, 3-4위전에서 중국의 [[천진(배드민턴)|천진]]에게 아깝게 1-2로 패하면서 4위를 차지했다. 즉, 메달을 못 건졌다는 뜻이다. 결국 따지 못한 메달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2012 런던 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차피 한국 남자 단식 선수 중에서 이현일을 능가하는 후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전영오픈 4강, 스위스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을 앞두고 제법 페이스가 괜찮은 편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단식 조별 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한 후, 16강과 8강을 잇따라 통과했지만, 4강에서 중국의 [[린단]]에게, 3,4위전에서 중국의 [[천룽]]에게 지면서 또 다시 4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메달과는 끝내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국가대표에서 완전히 은퇴하나 싶었는데, [[손완호]]를 제외하면 영 내세울 선수가 마땅치 않은 남자 단식의 상황 상 전격적으로 국가대표에 컴백했다.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 8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종합 스코어 2-2 상황에서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가 승리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는 종합 스코어 2:0으로 앞서다 내리 두 경기를 내주고 쫓기던 남자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중국 선수를 세트스코어 2:0으로 잡으면서 단체전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클래스의 영원함을 보여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