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회창 (문단 편집) === [[이인제]]와의 관계 === ||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602_246_5.jpg|width=250]] {{{+3 '''↓'''}}}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204271493020102011.jpg|width=250]] {{{+3 '''↓'''}}} [[파일:external/www.ebaekje.co.kr/20220_16805_5432.jpg|width=250]] || ||'''둘의 관계는 3개의 짤방으로 요약 가능하다.'''|| 15대 대선 당시 이인제는 최연소 [[고용노동부|노동부]] 장관에 이어 민선 초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떠오르는 정치인으로서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이는 이회창도 마찬가지긴 했다. 적어도 대선 이전까지는 같은 당원으로서 교류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선술한 [[15대 대선]]의 과정 속에서 둘은 경쟁하게 되었고 네거티브를 퍼붓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위에도 서술했듯 결과는 둘 다 낙선하여 결국 상처만 남긴 싸움이 되어버렸다. 이후 이인제는 '피닉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성공적인 철새테크를 탔고, 5년이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이 되어 네임밸류를 밀어붙이며 경선 초창기엔 독보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한 이회창과 리턴매치가 성사될 '뻔'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노무현]]의 영남을 중심으로 강세를 몰아친 노풍을 이기지 못하여 경선에서 떨어지며 무산되었다. 낙선한 이인제는 탈당하여 [[자민련]]으로 갈아타 과거 행적에 대해 거듭 사과한 뒤 이회창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이회창은 낙선하였다. 다시 5년이 흘러 [[17대 대선]] 시즌이 되자 민주당[* 당시에는 [[열린우리당]]과 갈라진 뒤로 주요인사가 전부 빠져나가 지리멸렬해진 상태였다.]으로 돌아간 이인제는 출마를 선언하며 정식후보가 되어 기호 4번을 부여받았다. 초반에는 출신지인 충청도를 기반으로 10%를 상회하는 무시할 수 없는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회창이 출마하면서 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컸던 포스를 몰아붙이며 충청도의 지지기반을 전부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로서 이인제의 지지율은 소수점대로 폭삭 무너졌으며, 이회창은 무소속 후보로서 중도층을 어필하며 15.1%의 득표율로 마감한 반면 이인제는 손써보지 못한 채 0.7%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굴욕을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탈당하여 무소속 국회의원 자리를 지낸 이인제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이 이끄는[* 입당한 2011년 당시에는 이회창은 이미 총재직에서 물러난 상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다.][* [[자유선진당]]이 [[국민중심연합]]과 합당할 때 동시에 합류했다.]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참고로 이인제는 [[자민련]]과 자유선진당과 합당한 [[국민중심당]]에 잠시 몸담갔던 시절이 있었다.] 이로서 껄끄러웠던 관계였던 둘의 사이는 개선되었고 14년 만에 동지로 회복되었다. 어쨌든 이인제로선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생활을 이어갔고 이후 이름을 바꾼 [[선진통일당]] 대표로도 활동했다. 이회창은 [[박근혜]]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새누리당]]으로 돌아갔고, 이인제도 이끄는 당을 새누리당과 합당시키면서 둘은 새누리당에서 한솥밥을 먹는 신분을 이어갔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인제는 정계활동을 이어나가는 반면에 이회창은 은퇴하며 평당원으로만 지낸다는 것. 악연과 인연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정말 질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1997년]]에 [[여당]] [[신한국당]]에서 민주계의 대표주자로서 대선후보로 달리던 이회창은 2017년에는 [[유승민]]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으로 옮기고, 민주계의 대표주자로서 신당을 창당하여 독자 출마를 감행했던 이인제가 [[자유한국당]]에서 대권주자로 달리다 경선 탈락했다. 이후에는 둘 다 정계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데, 이회창은 2012년 이후 정계 은퇴를 했고 [[이인제]] 역시 2018년 충남도지사 낙선과 2020년 [[논산시·계룡시·금산군]] 경선 탈락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