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후삼 (문단 편집) == 생애 == 1969년 9월 18일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전리에서 태어났다. 제천의림초등학교, 제천중학교, [[제천고등학교]], [[청주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 [[이화영(정치인)|이화영]]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약칭 더연)의 사무국장을 맡으며 [[안희정]]과 인연을 맺게 되고, [[안희정]]이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자 바로 도지사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된다. 지역 언론에서는 그를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79665|안희정의 그림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안희정]] 계파 중 한 명이자 최측근으로, 안희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실제로도 이를 위해 정무비서관직을 사직하고 안희정계의 세력 확대를 위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충청북도]] [[제천시·단양군]]에 출마하지만, 안희정의 파워가 충북, 그중에서도 충청도의 정체성이 가장 얕은 제천과 단양에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서 본인도 지나치게 안희정 마케팅을 하는 선거전략의 실수 등이 겹쳐서 58.19%를 득표한 [[권석창]]에 밀려 낙선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인생 최대의 시련은 바로 친안희정 계파였다는 것에서 찾아왔다. 2018년 3월 [[안희정 성폭력 의혹|안희정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으로 이후삼이 그렇게나 대통령을 만들려 했던 안희정은 몰락했고, 그 계파에 속했던 정치인들의 앞날도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이후삼 본인도 이때 정계은퇴까지 고민했던 듯하나, 험지인 제천·단양을 내팽개치지 말라는 주변의 강권으로 은퇴를 단념한다. 이후 [[권석창]]이 당선 무효되면서 열리게 된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자유한국당]] [[엄태영]] 후보와 2천여 표 차이의 경합 끝에 47.7%를 득표하며 당선되었다. [[단양군]]에서 밀렸지만 인구가 많은 [[제천시]]에서 앞선 데다가 지역 내 일부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바른미래당]] 후보로 분산된 것이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친문]] 의원들과 가까운 사이인 데다가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을 맡았기 때문에 현재는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뒤 경선을 통해 [[이경용(1966년 11월)|이경용]] [[단국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단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교수를 꺾고 후보로 공천받았다. 본선에서는 지역구의 전통적 보수세+단양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엄태영]]과의 리턴매치에서 패했다. 낙선 후 [[공항철도(기업)|공항철도]]의 사장에 내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06717|#]] 2021년 2월 [[공항철도(기업)|공항철도]] 사장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위원장직은 내려놓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어 당내 반발을 사 더불어민주당 [[제천시·단양군]] 당원들의 지역위원장직 사퇴 압력이 잇따르자 2021년 11월 21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으로 21대 총선에서 경선 상대였던 이경용이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