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민위원회 (문단 편집) === 활동 === 인민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여러 각 지역에 민간 자치 기구였다. 즉, '''민간인이 주체적으로 활동하여 실질적인 정부기관, 행정 업무를 맡는다'''는 얘기다. 이들이 주로 맡았던 업무는 치안, 행정, 식량 배급, 선전 등이었는데 특히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치안과 행정(특히, 식량 배급)문제였다. 치안 업무는 주로 [[일본군]] 패잔병의 횡포를 막는 것, 일본인이 조선인으로 가장해 횡포를 부리는 짓을 막는 것[* 실제로 미군이 진입했을 때 일본인이 조선인으로 가장해 테러를 저지르는 행위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토지, 산업체 등 군수 물자를 멋대로 처리하는 것을 감시하는 것, 해방 직후에 민중 내에서 친일파를 처단한다는 명목 하에 힘없는 사람들이 거기에 말려 억울한 피해를 입는 사태 등을 막고자 했었다. 행정 업무에 대해서는 각 면별로 국민학교, 중학원 등을 설립하여 자치 교육을 실시하였고 실질적으로 마을 행정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인민위원회의 활동은 전국적으로 대중들에게 상당한 신망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비록 서울에 있었던 중앙인민위원회는 박헌영의 극좌파들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우익 인사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이와 달리 지방의 인민위원회 경우는 좌익들만이 아닌 지역에서 양심가로 명망 높은 우익 세력 인사들도 대거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중국]], [[소련]], [[일본]] 등지에 이민, 징용, 징병 등 나갔다가 돌아오는 귀환민들의 행렬은 해방 후 수 개월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었던 무렵에 인민위원회는 이들을 맞이해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아직 철수하지 않은 일본 군, 경을 견제하는 등 1945년 말까지 실질적인 국가 기관처럼 활동했었다. '인민위원회'라는 말을 처음 듣는 이들은 [[인민]]이라는 용어 때문에 자칫 '[[공산주의]] 단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인민위원회는 [[사민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인민]] 문서의 의미를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