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부다처제 (문단 편집) ==== 근대 ==== 그러다 [[구한말]], [[개화기]] 이후 처첩제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일제 식민지 체제]]는 처첩제의 실질적 철폐에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관습적으로 처첩이 잔존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초대 헌법]] 이래 헌법에 혼인의 양성 평등을 규정함으로써 처첩제를 부정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말 그대로 [[아내]]와 [[남편]]이 1명씩만 있는 [[일부일처제]]만 인정한다. 특히 [[국가재건최고회의]]와 [[박정희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공무원 축첩 근절에 칼을 빼들었고 축첩이 적발된 공무원은 가차없이 [[파면]]했다. [[대한민국 국군]] 간부들의 경우 일부다처제, 내지는 축첩행위를 하면 '''[[현역부적합심사]] 대상이 된다.''' 1950년대에 일명 [[하늘집 유아 학대 사건]]이라 불리는, 이종국 육군 준장이 첩과 짜고 전처의 딸을 '''굶겨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이후 첩을 둔 군간부에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 또한 첩 제도와는 별개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때까지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부인을 2명 두는 경우가 있었다. 어렸을 때 가문에서 정해줘서 결혼하게 된 아내는 고향집에 두고, 도시에서 새롭게 본인이 좋아하는 '신여성'을 만나서 연애하여 결혼하는 형태. 물론 공식적인 제도는 아니다. 결혼의 개념이 집안 간의 결혼에서 개개인의 연애 결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긴 과도기적인 면모이다. 90년대 후반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6.25 전쟁]] 때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 남자가 [[피난]] 도중에 부인과 아이를 잃고 몇년 후에 재혼을 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부인과 아이를 다시 만났다. 처음엔 기뻐하다가 이내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두 집 살림을 하다가 결국은 들통났다. 이것도 황당한 경위로 들통나게 되는데, 남한 쪽 부인과 북한 쪽 부인의 [[팬티]] 취향이 달랐던지라 두 집을 오갈 때마다 필연적으로 팬티를 갈아입어야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급한 김에 골목길에서 팬티를 갈아입게 되었는데 마침 순찰중이던 경찰에게 걸려서 풍기문란죄로 잡혀가는 바람에 두 집 살림이 들통났던 것.[* 이 에피소드에서 경찰 역으로 특별출연한 사람이 80년대 후반에 활동한 듀오 그룹 '도시의 아이들'의 멤버 출신으로 후에 솔로로 독립해 가요 [[선녀와 나무꾼]]으로 잘 알려진 가수 김창남이다. 여담으로 김창남은 본인이 실제로 겪었던 한 불치병 소녀와의 인연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제보하기도 했고, 이 이야기는 '종이학'이라는 제목으로 극화되어 소개되었다.] 어찌어찌 해서 두 부인과 자식들을 모두 끼고 살게 되지만, 틈만 나면 마누라들이 머리 끄댕이 잡고 싸워서 문제였다. 그러다 두 부인들의 싸움에 진절머리가 나서였는지 대폿집 마담과 바람이 났는데(...),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부인들이 남편과 마담을 둘 다 쥐어 팼다.[* 극중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평소에는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부인들이 남편과 마담을 [[참교육|응징]]하는 장면에서 그야말로 --환장--환상의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본인은 죽을 때까지 "하나도 안 좋아..."라고 했다고.[* 남편이 나이가 들어 성관계시 정력이 딸리게 되자 부인들이 경쟁적으로 부자이중탕과 [[십전대보탕]]을 구해 남편에게 먹였는데, 하필 그 약들이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이라 고열에 시달려 며칠을 앓았고, 후유증으로 [[대머리]](...)가 되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죽은 이유도[* 1990년 6월 25일이었는데, 심지어 일요일이었다.] 2명의 부인이 화투를 치다 싸움이 붙은 것을 말리던 와중에 풍이 와서 사망한 것. 심지어 죽은 뒤에도 자신의 옆에 묻힌 부인들이 싸우는 바람에 결국 자식들 꿈에 유령으로 나타나서는 마누라들 무덤과 좀 떨어진 위치에 무덤을 이장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리고자 이장을 결정했는데, 두 어머니의 무덤과 떨어진 위치에 '''어느 한 쪽으로 1mm라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 이렇다보니 작업 시간이 거의 한밤중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인부들이 "대체 이게 뭐하자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덧붙이자면,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참 적절하게도(?) '''아버지는 [[비무장지대|DMZ]]'''였다. 당시엔 행정 시스템도 빈틈이 매우 많았고, 전쟁통에 사람 행방을 모르게 되는 일이야 흔하다 보니, 재혼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마담과 바람 핀 건 죽도록 맞아도 모자란 일이라 실드조차 불가능하다.--[[광장(소설)|중립국으로 간 게지]]--[* 그 외에도 드라마 [[육남매]]에도 육남매들의 고모와 실향민인 고모부가 재혼을 했는데 고모부의 원래 부인과 서울대생 아들을 뒤늦게 만나는 일이있다.] [[무한도전]] [[명수는 12살]]에서 12살로 돌아간 멤버들이 각자 자기 집에 뭐 있다, 뭐 있다 자랑을 늘어놓는 와중에 우리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다, 우리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다 이렇게 가족 자랑으로 이어졌는데, [[길(가수)|길]]이 굉장히 담담하게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두 분이셨어'''"라는 멘트를 날려서 멤버들 입을 다물게 하기도 했다.[* [[노홍철]]은 "니가 이겼다."라며 말문을 닫았고, [[유재석]]은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되냐"라며 난감해 했으며 [[박명수]]는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어. 암암리에 그런 게 인정이 됐어."라고 수습했다. 길이 1978년생이므로 길의 할아버지 연배면 [[1910년대]]생 정도로 [[일제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냈을 것이며, 정부 수립(1948년)은 고사하고 해방(1945년)되기도 전에 결혼했을 테니 축첩이 사회적으로 그렇게 흠 잡힐 일까지는 아닌 시대였다고 할 수도 있다.] 길의 말로는 어떤 할머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어린 마음에 고민이 많이 되었다고.[* 여기에 대한 박명수의 대답은 "'''용돈 많이 주는 할머니가 짱이야.'''"] 특별히 부끄럽다거나 숨길 생각은 없는지 나중에 [[무한상사]] 뮤지컬편에서도 한 번 더 써먹는다.[[https://www.tvreport.co.kr/17724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